[연재_울산, 소설이 되다Ⅴ] 불 사랑 국경 없는 무언가 (10)

선혜가 크게 뜬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네? 제게 건 전화가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그거 확인하러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 전화는 제게 온 전화가 맞습니다."
선혜는 우진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우진이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백팩을 앞으로 가져와 지퍼를 열고는 뭔가를 꺼냈다. 흰색 스마트폰이었다. 아버지 남태일의 폴더폰은 아니었다. 우진은 스마트폰을 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으세요."
담담한 말투로 우진이 말했다. 이어 선혜의 겉옷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느껴졌다. 선혜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밝은 화면에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떠 있었다.
"아……."
선혜는 탄식했다. 화면 속 번호는 선혜의 휴대폰 번호와 거의 같았다. 숫자 두 개만 다를 뿐이었다. 가운데 자리 하나와 뒷자리의 마지막 숫자 하나. 다른 번호마저 키패드의 이웃한 숫자였다.
"바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는 자욱하고 의식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제 번호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겁니다. 통화 목록에서도 찾기 어려웠어요. 아버지와 저는 용건 없는 전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는 번호를 누르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입술을 말아 물며 참으려 했지만 선혜의 한쪽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진이 전화를 끊자 선혜의 휴대폰도 함께 잠잠해졌다.
"미안해요. 그것도 모르고 제가……."
"아뇨. 오히려 감사하죠."
우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 전화를 받아주셨잖아요."
젖은 손등을 옷자락에 닦아낸 선혜가 휴대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받고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래서 더 저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버지와 저는 전화를 건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버릇이 있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선혜가 말끝을 흐렸다.
"몇 초 지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진은 숨조차 아끼고 선 채 선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안하다."
"……."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우진은 돌아서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통화에 담긴 아버지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먼 길을 온 사람이라기엔 반응이 너무 덤덤했다. 선혜도 우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서너 번쯤 꺾어 돌며 남은 이백 개의 계단을 다 오르도록 우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찰의 석벽 위로 내걸린 연등 몇 개와 그 곁에 선 오랜 수령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사천왕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멈춰 선 우진이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선혜는 두어 걸음 뒤에 서서 기교 없이 단정하게 쌓아 올린 삼층 석탑을 올려다보았다. 석탑 뒤로는 아담한 규모의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혜는 맵시 있게 올라간 팔작지붕의 처마 위로 내려앉은 구름 한 점을 무감히 바라보았다. 석탑 왼편의 종무소 문간에 한 노보살이 서 있었다. 노보살이 우진과 선혜를 향해 손짓했다. 느린 걸음으로 둘을 제치며 계단을 오르던 할머니였다.
"공양간 문 닫기 전에 잘 왔네. 여기 여기."
노보살이 툇마루를 가리키고는 종무소 옆 공양간으로 들어가더니 대접 두 개를 양손에 들고나왔다. 그릇에는 무 생채와 콩나물무침, 반달 모양으로 썰어 볶은 애호박이 흰 밥 위에 소보록하게 담겨 있었다. 공양 그릇을 든 우진과 선혜가 마루에 걸터앉자 노보살이 두 사람의 손에 숟가락을 하나씩 쥐어 주었다. (계속)

# 강이라 소설가
제24회 신라문학대상과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현진건문학상에 단편 「스노볼」이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 『웰컴, 문래』, 청소년 장편소설 『탱탱볼:사건은 문방구로 모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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