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신고 울음 대신 웃음으로… “나 편히 보낸다 생각하오”

장재선 전임기자 2025. 5.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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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들었어요. 지금도 저는 자는 중입니다."

문화계 원로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은 장례식 전야제 토크에서 자신들이 박 배우의 남자친구 1, 2, 3호라고 자처해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김종규 회장은 "이렇게 많은 인사들이 강릉까지 온 걸 보며 박정자 배우가 참 살았구나, 싶었다"라며 "가상의 장례식이지만 죽음을 유쾌하게 웃으며 받아들이자는 뜻에 공감하게 되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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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강릉서 ‘사전 장례식’
김동호·강부자 등 150명 참석
만장엔 그동안 출연 연극 적어
박정자 배우가 25일 자신의 ‘사전 장례식’에서 문상객들을 맞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만장을 들고 상여 행렬을 따랐다. 양대인 사진작가 제공

“새벽에 잠들었어요. 지금도 저는 자는 중입니다.”

26일 오전 전화를 통해 듣는 박정자(83) 배우의 음성이 갈라져 있었다. ‘국보급 저음’으로 알려진 그에겐 이례적인 일이다. 전날 열린 자신의 ‘장례식’에 얼마나 혼신의 힘을 썼는지 헤아리게 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연극계 대모인 그는 강원 강릉 순포해변에서 지인 150여 명을 초대해 ‘사전 장례식’을 치렀다.(문화일보 5월 13일 자 29면 보도) 북과 꽹과리, 장구 장단이 넘실거린 이날 장례식은 울음 대신에 웃음과 박수, 환호가 넘쳤다. 박 배우는 연두색 원피스에 빨간 구두 차림으로 춤을 추듯 상여 행렬을 앞에서 이끌었다. 문상객들이 각자의 손에 든 만장이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만장엔 박 배우가 출연했던 연극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프라노 임선혜의 노래가 행렬의 뒤를 따랐다.

“그냥 나 편히 보낸다 생각하오/ 아 인생이 참 덧없어라/ 이 노래 한 자락 들려주고 떠나오/ 멀지 않았소 그대여/그냥 웃음만 환한 웃음으로….”

이 노래를 작곡한 유준상 배우 겸 감독은 “죽음을 좀 더 편안하게 맞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기실 이번 장례식은 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 사이’의 마지막 촬영을 겸한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배우를 통해 늙어감과 죽음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박 배우는 이번 촬영에 평소 인연이 깊은 지인들을 초대해 숙식을 제공하며 1박 2일로 ‘장례 축제’를 벌였다.

강부자, 양희경, 송승환, 남명렬, 정경순, 오지혜, 배혜선, 강필석, 김호영 등 배우들과 손진책, 한태숙 등 연출가들이 참여했다. 성우 김세원, 소리꾼 장사익, 사진작가 김용호, 건축가 유병안, 시인 박용재도 함께했다. 이창기 서울시 문화수석,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 등도 보였다.

문화계 원로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은 장례식 전야제 토크에서 자신들이 박 배우의 남자친구 1, 2, 3호라고 자처해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김종규 회장은 “이렇게 많은 인사들이 강릉까지 온 걸 보며 박정자 배우가 참 살았구나, 싶었다”라며 “가상의 장례식이지만 죽음을 유쾌하게 웃으며 받아들이자는 뜻에 공감하게 되더라”고 했다.

박 배우는 “내가 사는 동안 은혜를 베풀어준 분들이 떠날 때까지 함께 해 주니 뭐라 말할 수 없이 고맙고 좋았다”고 했다. 그는 “모두들 사는 동안 한껏 행복하게 살고, 헤어질 때 웃으며 떠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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