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기증자 정자로 태어난 67명 중 10명에서 암 발병

박해식 기자 2025. 5. 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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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에서 암을 유발하는 희귀 돌연변이를 가진 남성의 정자를 기증 받아 출산한 아이 67 중 10명이 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정자 기증에 관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 루앙 대학병원의 생물학자인 에드비주 카스페르(“Edwige Kasper) 박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24~27일(현지시각) 열리는 유럽 인간유전학회(European Society of Human Genetics)에서 이번 사례를 발표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동일 인물이 기증한 정자로 임신한 아이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지난 2008년부터 2015년 사이에 태어났다.

단일 기증자의 정자로 여러 국가에서 다수의 자녀를 낳는 것에 따른 사회적 심리적 위험을 많은 전문가가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유럽 정자은행은 동일 기증자의 정자를 최대 75명의 여성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카스페르 박사는 “단일 기증자의 정자로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수를 유럽 차원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례는 두 가족이 기증받은 정자로 출산한 아이가 희귀 유전 변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암이 발병한 후 각각 불임 치료를 받은 병원에 연락하면서 드러났다.

정자를 제공한 유럽 정자 은행(European Sperm Bank)은 기증자의 정자 중 일부에서 TP53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희귀 변이는 2008년 기증 당시에는 암과의 관련성이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표준 검사법으로는 검출되지 않았다. 기증자는 당시 건강 상태가 양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카스페르 박사 연구실의 분석 결과, 이 돌연변이는 가장 심각한 유전적 암 소인 중 하나인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을 유발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은 세대 간 유전되는 TP53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적 암 위험 증후군으로 유방암, 골육종, 연조직육종, 뇌종양 등의 발병 위험이 높다.

이번 사례와 관련된 8개국 46가족에서 태어난 67명의 아이가 검진을 받은 결과 23명에게서 유전적 변이가 발견되었고, 이중 10명 아이가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과 같은 암 진단을 받았다.

위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정기적인 전신 MRI 검사, 뇌 MRI 검사, 성인 이후에는 유방 MRI 및 복부 초음파 검사가 권장된다.

동일 기증자의 정자를 몇 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은 정자 기증을 25명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영국은 10~12명, 독일은 15명, 싱가포르는 3명, 일본·중국은 5명, 타이완은 1명 이상에게 정자가 제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내는 난자 기증자의 경우에만 기증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다만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은 정자 기증 횟수를 10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운영하는 정자 은행도 아직 없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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