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셰계는 스테이블코인 전쟁… 걸음마도 못 뗀 한국
다양한 통화 활용 외환업무 가능
비자, 결제망 정산 인프라에 도입
마스터카드·페이팔 뒤이어 결합
투자 미흡한 韓, 규제개선 최우선
대선 후보들도 관련 공약 쏟아내

스테이블코인은 불안정한 코인의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초기에는 법정화폐와 가치를 일대일로 맞춘 담보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수익형 구조와 실물자산 연계 등으로 진화했다.
넓어진 의미의 스테이블코인은 준비 자산이나 설계 방식에 따라 법정화폐, 가상자산, 알고리즘, 수익형 등으로 확장되며 이자 지급과 자동 수익 분배 등의 금융적 기능이 추가됐다.
최근 이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을 주목한 미국은 이미 관련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 패권 노리나=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지니어스액트'는 달러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제도권으로 가져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의무 보유하고,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방지 규제 준수, 발행사 파산 시 코인 보유자 회수 우선권 부여 등이 포함됐다.
폴 앳킨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제시했던 '규제의 명확화'와 함께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법안이다. 이번 법안이 하원까지 통과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먼저 제도화한 나라가 된다. 그만큼 시장의 선점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결국 혁신이 될 것"이라며 "쓸모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코인이 다양한 실물자산과 연계되고, 이를 통한 금융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결제수단으로서의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전 자산과 연계된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안정돼 있어 충분히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시장에서 무언가를 사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통화와 연계된 서로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외환업무가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무언가를 사고팔 때 항상 환전업무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막대한 수수료와 지연 결제 등의 우려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단순히 지갑에서 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하는 것 만으로 이 업무가 끝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 과정 속에 새로운 보증기관이나 담보물이 발생할 수 있지만, 업무의 단순화라는 혁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면 스테이블코인이 '기축통화'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서두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담보물에 미 국채를 포함시키며 국채수요를 떠받치는 동시에 회계처리, 결제 인프라 연계, 자금세탁방지 등을 미국이 주도해 나갈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산업의 시작과 표준이 될 수 있다.
현재 법정화폐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 코인이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총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발행사는 보유자의 환전 요청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유통 중인 토큰 가치에 상응하는 안정적인 준비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 같은 준비자산의 대부분은 단기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다. 단기 미국채는 유동성과 안정성이 높고, 발행사가 안정적인 이자 수익도 얻을 수 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을 신규 발행할 때마다 이에 상응하는 국채수요가 발생한다.
실제 2020년 테더와 서클의 스테이블 코인 유통량이 급증하며 이들 기업의 미국채 보유 규모도 크게 확대됐다.
최윤영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1분기 기준 테더와 서클은 준비자산의 약 80% 이상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며 "두 회사가 보유한 미국 국채 총액은 약 1750억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경쟁적으로 '글로벌 인프라 구축'= 미국과 함께 이미 글로벌 기업들 역시 스테이블코인 활용 고민에 나섰다. 실물 경제에서의 실질적인 활용 여부가 향후 역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국과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시장 재편에 나섰다. 비자, 페이팔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자신들의 인프라에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통합했다. 국경 간 거래, 디지털 크리에이터 보상, 온체인 결제 등을 이미 실현해 스테이블코인을 실물 경제와 연결했다.
비자는 스테이블코인을 글로벌 결제망 백엔드 정산 인프라에 도입했다. 2021년 크립토닷컴과 함께 이더리움 기반 USDC 파일럿 결제를 진행했다. 크립토닷컴이 비자의 지정 계정으로 직접 이체해 국경간 정산 속도와 비용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이후 비자는 솔라나 등 고성능 블록체인을 정산망에 추가하고 수백만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정산을 실행해 능력을 입증했다.
마스터카드도 2023년부터 블록체인 결제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유통을 실험하며 다중 토큰 네트워크도 설계하고 있다. 이 인프라는 결제뿐 아니라 온체인 고객확인과 같은 규칙 기반의 결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페이팔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며 결제 시스템을 통합했다. PYUSD를 출시한 페이팔은 미국 달러 예치금과 현금 등가물에 일대일로 담보돼 신뢰성을 확보했다. 이를 활용해 사용자가 보유, 송급, 결제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PYUSD를 달러로 상환할 수도 있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대선공약' 등장= 단순한 가상자산 투자에만 집중하며 스테이블코인에 뒷전이었던 우리나라 역시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른 통화의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으로 확인된 미국채 수요 확대 등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외화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우리 제도권으로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준비금 구조와 환급, 발행 주체의 책임 등이 숙제로 꼽힌다.
특히 규제에 치중하며 발행 프로젝트가 사실상 사라진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아무런 규제나 체계 없이 새로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과 관리 기준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할 예정이지만, 그동안의 규제일변도를 경험한 업계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7대 공약 중 하나에 스테이블코인을 포함시켰다. 규율체계를 만들고 진입장벽을 낮춘다는 구상은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두 명의 주요 후보가 스테이블코인에 공통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향후 산업 발전 기대감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선영 코빗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은 물론 가상자산 기반 결제나 실사용에 대한 실험조차 제도적 제약으로 사실상 금지돼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거시 금융 인프라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국내 사업자들은 제도 미비로 선제적인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시대의 유동성 확보 수단이자 실물 경제와 결합된 미래형 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한국은 글로벌 혁신 흐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신중한 도입이 아니라 실사용 기반의 테스트베드 구축과 제도 유연성 확보를 통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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