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아파트' 지방도시, 메가시티가 살릴까[대선, 내 삶을 바꿀까⑨]

2025. 5.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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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탈 심화하며 지방소멸 현실화
최근 10년간 수십만명이 수도권으로 몰려
이재명·김문수 등 대선 후보,
각 지역 메가시티를 핵심 지방 공약으로 내세워

[커버스토리: 대선, 내 삶을 바꿀까]


울산에 거주하는 48세 김모 씨는 수능을 앞둔 아들에게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잔소리한다. 울산에서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산이나 대구 등 인근 도시의 상황이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다. 

10년 전 조선업 불황의 여파는 여전히 울산을 괴롭히고 있다. ‘서울보다 부자 도시’는 옛말이다. 도시 밖으로 쫓겨난 청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자리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거리에 젊은이들이 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젊은 사람을 보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울산의 흥망을 지켜본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이래 없어서 우짜노”라고 탄식한다. 

지방소멸은 현실이다. 2015년 이후 울산을 떠난 청년(19~34세)은 5만 명에 달한다. 25만 명에서 19만 명 규모로 줄었다. 다른 지역이라고 다르지 않다. 부산과 대구에서도 각각 7만 명가량의 청년이 사라졌다. 같은 기간 전북에서는 청년 5명 가운데 1명이 없어졌다. 일자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최저시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판타지 영화보다 더 현실성이 없다. 

일각에서는 지방 도시를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빗대 ‘노인과 아파트’라고 표현한다. 오라는 기업은 안 오고 남은 땅에는 아파트만 주야장천 들어선다는 것을 지적하는 비유다. 일자리를 기다리던 청년들은 희망을 접고 상경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있다. 

돈이 돌지 않는 도시는 껍데기만 남는다. 빈집이 많아지면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인근 상점들은 폐업한다. 상점이 사라지면 동네 주민들은 더 먼 곳으로 나가 장을 봐야 한다. 차가 없거나 이동이 힘든 노년층은 소비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은 도시를 무너뜨린다.

이번 대선이 끝나면 지방의 암울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당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까지 지역을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재명 후보는 지방의 경제성장을 약속했다. 경북은 자동차와 바이오를, 경남은 조선과 석유화학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AI와 금융의 중심은 호남에 구축한다. 비교적 수도권과 인접한 강원은 ‘K-관광’ 활성화를 추진한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의무화하고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을 선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국립대의 경쟁력을 강화해 인재를 양성해야 기업이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주장이다.

김문수 후보는 지방에 각 신사업의 허브를 구축해 산업구조를 대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은 금융·물류·신에너지, 광주는 AI 생태계, 충북은 바이오 등의 산업벨트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 유치를 위한 규제를 우선 완화하겠다는 게 김 후보의 공약이다.  

두 후보 모두 지역 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내걸었다. 각 지역의 격차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민자 유치, 국비, 지방비, SOC 예산 재조정 등으로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특히 이 후보와 김 후보 모두 ‘부울경 메가시티’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20대 대선에서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부산-울산을 포함한 경남의 모든 지역을 30분(김문수는 1시간) 내로 이동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GTX급 고속철도와 환승체계도 마련해 수도권 수준의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제2의 수도권처럼 초광역 경제권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광주를 중심으로 전남과 전북이 융화하는 호남권 메가시티와 대전·세종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충청권 메가시티 등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행정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광역행정을 통합해 중복으로 잡히는 인력 비용을 줄이고 행정 기능도 효율화할 수 있다. 지역 간 불균형 해소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메가시티의 가장 큰 장점은 죽어 있는 도시까지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한 영국 런던이 그 모델이다. 런던은 지난해 세계도시경쟁력지수(GPCI)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런던은 중심지인 런던과 32개 자치구로 구성된다. 

영국 정부는 1965년 런던의 행정·교통·개발을 통합 관리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지리적 팽창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본격적으로 메가시티 모습을 띤 것은 교통 통합이 시작된 2000년대 들어서다. 2000년 광역행정청 산하에 런던교통공사(Transport for London, TfL)를 두고 런던 지역의 지하철, 경전철, 트램, 버스, 택시, 도로교통 등을 통합관리했다. 

런던과 자치구가 하나로 움직이자 기업의 투자가 메가시티 단위로 시작됐다. 또 금융(시티 오브 런던), 예술산업(소호), 교육·의료(서쪽 지역) 등으로 산업 클러스터가 세분화됐고 전문성을 가진 지역에 대한 투자는 더 늘었다. 그 결과 현재 런던에 약 900만 명, 각 자치구에 15만~20만 명이 거주해 총 인구 1400만 명 규모의 도시가 됐다. 

수도권 전체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는 서울도 비슷한 사례다. IT산업(판교), 물류(인천), 제조(수도권 외곽), 금융·문화(서울 중심) 등으로 산업 구분이 고도화됐으며 산업을 기반으로 지역경제도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우라나라 지방도 메가시티로 전환한다면 산업 기능을 지역별로 나누고 전문성을 높여 기업 유치 가능성도 높아진다. 부울경에서는 울산은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부산은 물류·e스포츠, 경남은 항공·방산 등이다. 인구 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올해 4월 기준 부울경 인구는 약 757만 명이지만 메가시티 구축을 통해 1000만 인구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호남에서는 군산에 조선소, 광주에 AI와 모빌리티 등의 산업을 중점적으로 키운다. 약 500만 명 수준의 호남 지역도 메가시티로 확장된다면 더 많은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다. 충청 지역에서는 세종을 행정수도로 하고 대전에는 과학기술, 충북에 2차전지와 바이오 등의 산업벨트를 구축하려고 한다.

다만 메가시티에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약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이다. 부울경이 대표적이다. 성공적인 메가시티로 꼽히는 런던의 행정구역 면적은 약 1572㎢, 도쿄는 2194㎢다. 반면 부산과 울산을 포함한 경상남도 전체 면적은 1만㎢가 넘는다. 도쿄의 4.5배, 런던과 비교하면 7배에 달한다. 면적이 넓으면 기능 통합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거버넌스 비용도 늘어난다. 또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생활권 통합의 현실성도 떨어진다. 

지자체 간 이해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산 분배와 기업 유치, 정책의 우선순위 등을 놓고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메가시티의 중점 도시를 어디로 둘 것인지 각 도시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이견도 발생할 수 있다. 균형 발전에 실패할 경우 특정 광역시에 자원이 집중될 문제도 있다. 경제 불균형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창원 기업에 근무하며 돈을 벌지만 소비는 문화 콘텐츠가 많은 부산에서 한다면 지역 상권이 더 약화될 우려가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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