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성인(聖人) [인문산책]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서양에서는 한 분야를 개척했거나 핵심 인물을 '아버지'라 부르곤 한다. 역사의 아버지-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히포크라테스, 수학의 아버지–피타고라스, 음악의 아버지–바흐 등이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는 흥미롭게도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까지 3명이나 된다. 탈레스는 가장 빠른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정립자, 플라톤은 집대성자이기 때문이다. 즉 판단 기준의 차이에 따라 아버지도 여럿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란 표현은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빌헬름 분트(독일), 현대 미술의 아버지-폴 세잔(프랑스) 등 계속되고 있다. 음악의 어머니-헨델처럼 간혹 ‘어머니’가 있기도 하지만, 압도적으로 아버지 판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버지일까? 그것은 기독교 문화에서 야훼를 창조주로의 남성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예수의 존재는 야훼를 남성으로 판단하는 단적인 측면이다. 또 창조주라는 시작의 속성은 아버지와 통한다. 소위 ‘하나님 아버지’ 구조인 셈이다. 이를 모사하는 것이 서양에 만연한 '아버지' 칭호다.
물론 여기에는 '완전성의 신이 굳이 남성일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존재할 수 있다. 완전성이라면, 인간과 달리 성을 초월해야 한다는 판단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서양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한 분야의 대표자로 일가를 이룬 분을 성인(聖人)이라 한다. 공부의 성인(文聖)-공자, 무예와 전쟁의 성인(武聖)-관우, 역사의 성인-사마천, 의술의 성인-장중경, 초서의 성인-장욱, 서예의 성인-왕희지, 미술의 성인-오도현, 차의 성인-육우, 시의 성인-두보, 술의 성인-두강 등이다.
율곡은 자신의 공부 목적을 "내 공부는 성인이 되는 것에 있고, 성인이 되지 못하면 내 공부는 마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성인이 노력을 통해 성취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성인은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극기하고 노력해서 완성을 이루면, 신조차 능가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서양이 신을 모사해 아버지를 칭한 것과는 다른,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는 대자유와 행복의 메시지다.
서양이 신과 분리된 인간의 속에서 최고를 지향했다면, 동아시아는 노력해서 신을 넘어서는 성인의 경지를 천명한다. 유교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를 역설했다면, 불교는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의 완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신이 필요 없는 인간 해방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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