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공부 못시키는 세상"···관리형 독서실에 밀린 공교육
‘프리미엄 자습 환경’ 명목
최소 월 60만원···대기자 수십명
2018년 야간자율학습 폐지 후
‘통제’ 서비스 사교육 성행
교육계, 공교육 한계·불평등 지적
차별 심화···제도적 대책 절실

울산 옥동의 한 관리형 독서실. 오전 7시 30분 학생들은 출석체크를 한 후 휴대폰을 반납하고 독서실의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영어단어 시험이 시작되고 점심·저녁시간을 제외하고는 오후 10시까지 책상 앞을 떠날 수 없다. 식사도 외출도 정해진 시간에만 허용된다. 매니저들은 CCTV를 통해 학생들을 감시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감시와 통제속에서 이뤄지는 학습에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학습은 더이상 공교육, 즉 학교 몫이 아니다. 이제 '유료 서비스'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사교육 시스템'이다.
#울산 교육1번지 '옥동' 학군 중심 '관리형 독서실' 성행
25일 울산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울산 옥동학군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는 '관리형 독서실'은 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대신해 부모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사교육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학생 출결체크, 공부 계획 관리, 단어 시험을 비롯해 한달에 한번 모의고사도 치른다. 관리형 독서실 매니저, 학습플래너들은 독서실 내에 설치된 CCTV로 학생을 관찰한다. 잠을 자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학생이 있으면 찾아가 깨우거나 자세를 지적한다. 프리미엄 자습 환경이라는 명목으로 운영되는 이 공간의 최소 이용료는 월 60만원 가량이다. 식사, 기출문제 풀이, 인터넷 강의 수강 등이 합쳐지면 한달에 100만원에 달한다. 기존 스터디카페 월 고정석 이용료가 2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3배 비싸다.
고등학생 자녀를 관리형 독서실에 보냈다는 김모(47)씨는 "관리형 독서실에 자리가 없어 2달 가량 대기 후 겨우 들어갔다. 들어보니 대기자들이 수십명 된다고 한다"라며 "학교에서 야자(야간 자율학습)라도 있으면 최소한 돈 걱정은 없었을거다. 공교육이 해줘야 할 공부 관리를 사교육이 대신하면서 교육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이젠 돈 없으면 아이 공부도 못시키는 시대"라고 밝혔다.
교육 양극화 심화현상이 생겨나면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같은 입시 레이스에서 출발선부터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 관리형 독서실에 다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프리미엄 관리형 독서실은 옥동에만 5곳으로 몰려있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관리형 독서실에 보내달라고 해서 비용을 알아보다 월 60만원이라길래 깜짝 놀랐다"라며 "고1 아이 앞으로 들어가는 돈만 월 200만원이 넘는다. 관리형 독서실에 보내면 식비 등도 고려해야하는데 월 100만원을 추가 부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차라리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부모 재력따라 교육격차 실감" ···제도 손질 시급
울산지역 관리형 독서실의 성행 이유는 야간 자율학습 폐지가 원인으로 꼽힌다. 학생들이 공부할 곳이 없다보니 독서실을 찾게 되고, 의지가 약한 학생들은 '관리와 통제'를 돈 주고 사야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울산지역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은 강제학습이라는 비판과 학생 인권 보장 차원에서 2018년께 모두 사라졌다.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은 카페형 학습공간인 '스터디 카페'에 다녔고, 최근에는 '관리형 독서실'에 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백만원을 내면서 공부하고 있다. 야자가 사라진 자리는 사교육이 빠르게 채워 넣은 셈이다.
울산교육계 관계자는 "야자 폐지 원인은 '강제성'에 있었다. 당시 야자 폐지를 반대하던 교사들은 '무조건적 야자 금지는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었다"라며 "야자 폐지 후 수년이 흐른 지금 결국 학생 관리와 학습지도는 사교육으로 전가됐다.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비싼 돈을 주고 '통제' 서비스를 사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에 교육계는 '경제력에 좌우되는 교육 기회의 격차'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관리형 독서실 성행과 비용은 공교육의 한계와 불평등을 드러내는 지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관리형 독서실이 단순 사교육 성행이라기보다 공교육의 기능 부재가 만든 결과라고 보고 있다.
울산교육계 관계자는 "학교 야자의 문제는 강제성보다는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공공적 학습 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다"라며 "공교육의 빈자리를 사교육이 대신하면서 교육 격차는 빈부격차, 계급격차로 굳어지고 있다. 차별을 심화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대책이 절실하다"라고 밝혔다.
강은정 기자 kej@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