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상 이란 반체제 영화감독 "억압할 권리는 없다"
자파르 파나히 '단순한 사고'
저항과 생존 감각 일깨운 걸작
베를린·베니스 이은 작품상
요아킴 '센티멘털 밸류' 2등상
'비밀 요원'은 감독·남우주연상
'막내 아이' 주연 나디아 멜리티
여우주연상 트로피 들어올려

'영화 제작 금지, 외신 인터뷰 금지, 여권 압수, 가택 연금' 등 이란 정부의 강력한 억압으로 영화인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하며 수모를 겪었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제78회 칸영화제에서 1등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파나히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이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석권하면서(트리플 크라운) 인류 영화사의 새 역사를 썼다.
24일(현지시간) 제78회 프랑스 칸영화제 심사위원회는 올해 칸 황금종려상(팔메 도르) 수상작으로 '이란 반(反)체제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자파르 파나히의 '단순한 사고(Un Simple Accident)'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파나히 감독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두 손을 번쩍 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대배우 즬리에트 비노슈는 "파니히의 영화 '단순한 사고'는 오늘날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항과 생존의 감정을 일깨운다. 예술은 언제나 승리할 것"이란 평을 남겼다. 연단에 선 파나히 감독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우리에게 지시해선 안 된다"면서 "극장은 하나의 '사회'이며, 이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억압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칸 현지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초연)로 관람한 수상작 '단순한 사고'는 진지한 주제와 유머러스한 아이러니를 동시에 포착한 문제작이었다. 영화의 출발은 제목처럼 단지 한 가족이 탔던 자동차 엔진의 '단순한' 고장이었다. 야밤에 차가 고장 나자 운전자 남성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수리기사 바히드는 저 남성의 발소리를 듣고 그가 자신을 과거에 감옥에서 고문했던 별칭 '페그 레그(peg leg·의족이란 뜻)'라고 확신한다.
미행 끝에 페그 레그를 삽으로 쳐 납치한 바히드는 그 남성을 살해하려 하지만, 남성은 "내가 다리를 잃은 건 오래전이 아니라 작년이다. 난 당신이 찾는 그 자가 결코 아니다"고 항변한다. 바히드는 이 남성을 밴 뒷좌석 큰 상자에 감금하고는 고문 희생자를 한 명씩 찾아다니며 "이 자가 페그 레그가 맞는지"를 묻고 다닌다. 웨딩사진 촬영기사, 결혼식을 하루 앞둔 신혼부부 등이 바히드의 밴에 탑승해 '페그 레그의 상자'를 열며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바히드와 친구들이 밴으로 이동하며 페그 레그의 상자를 열어보는 과정은 한 인간의 깊은 진실 게임이자 과거 트라우마를 열어보는 행위다. 이는 이란의 억압적인 현실 세계를 겨냥한다. 깊고 어두운 소재이지만 영화는 설득력이 강한 유쾌한 정서로 가득해 이날 뤼미에르 대극장에선 많은 장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단순한 사고'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글로벌 독립영화 배급사 네온의 진가를 재확인시켰다. 네온은 봉준호 감독의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에 이어 '티탄' '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 '아노라' 등 6년간 5개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배급한 '족집게 배급사'로 유명한데, 이번 '단순한 사고'도 네온이 배급했다. 네온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가운데 '알파'와 함께 '단순한 사고' 배급도 맡았는데, 이번 수상 결과로 네온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은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의 '센티멘털 밸류'가 수상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지만 명성이 자자한 연극배우 노라가 한물간 유명 영화감독인 아버지 구스타프로부터 배역을 제안받은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자살한 어머니(노라의 조모)에 관한 전기 영화를 만들려 하는데, 주연배우로 딸을 선택한 것. 가족의 절절한 아픔까지도 영화로 이용하려는 예술인 아버지에 대한 딸의 반감을 다룬 문제적인 작품이었다.
'센티멘털 밸류'의 주인공 레나테 레인스베는 2021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요아킴 트리에르가 이 작품의 감독이었는데 4년 만에 두 사람은 또 한번 역사를 썼다.
정치 스릴러 '비밀 요원'은 무려 2개의 트로피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비밀 요원'을 연출한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는 감독상을,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바그네르 모라는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1977년 브라질 시골 마을에 도착한 전직 비밀 요원 마르셀로의 시선으로 카니발(축제)에 빠져 치안이 부재한 도시를 그린 작품이었다. 신문지 몇 장으로 대충 덮은 시체가 주유소에 방치돼 있지만 경찰은 '경비 인력 부족'을 이유로 사건을 외면한다. 죽은 상어 입에서 사람의 다리가 발견되는 등 마을 희생자가 100명에 달하는데도 독재 정권은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필류 감독은 "이 영화는 단순한 스파이 스릴러가 아니다. 우리가 겪은 억압과 침묵, 그리고 상처를 기억하려는 시도"라는 수상 소감을 말했다.
심사위원상에는 올리버 렉스의 '시라트', 마샤 실린스키의 '사운드 오브 폴링'이 공동 수상했고, 각본상은 이미 황금종려상을 2회 받은 다르덴 형제의 '젊은 엄마들'이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영화 '막내 아이'의 주연을 맡은 나디아 멜리티가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막내 아이'의 감독 하프시아 헤르지는 주연배우 멜리티가 수상하는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려 눈길을 끌었다.
중국의 1989년생 감독 비간은 '리저렉션'으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경쟁 부문 진출작 21편을 발표한 때는 미포함됐으나, 5월 8일 칸영화제를 5일 앞두고 22번째 진출작으로 '추가 합격'한 작품이기도 했다. 23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확인한 '리저렉션'은 미장센이 대단히 강력한 실험적인 정신의 영화로 전쟁을 끝낼 상자의 행방을 알고 있는 한 남성을 추적하는 영화다. 청력을 잃어야만 연주 가능한 악기, 죽은 뒤 다른 공간에서 깨어나지만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몬스터, 거울 속에 숨으며 여러 거울을 이동하는 살인자 등이 나온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한국 영화가 한 편도 없었지만 학생들의 중단편 영화를 경쟁하는 '라 시네프' 부문에서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이 1등상을 수상했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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