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년 ‘재즈 거장’ 펫 메시니···한 사람이 이뤄낸 남녀노소 대통합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무대 위에는 기타 2대와 스탠드 마이크, 의자가 놓여 있고 양옆에는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물체가 보인다.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오랜 세월 공연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저 혼자 무대에 올라 공연 전체를 이끌어가는 투어는 처음입니다. 잘 세지 않아 몰랐지만 누군가가 제게 지금까지 앨범을 53장 냈다고 말해주더군요. 오늘 밤 공연은 저의 솔로 음악 여정을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다양한 음악으로 채우겠습니다.”
‘재즈계의 거장’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71)의 목소리였다. 곧이어 그가 하얗게 센 특유의 굽슬굽슬한 긴 머리를 치렁거리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박수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2016년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 이후 9년을 기다려온 한국 팬들의 환호성이었다. 팻 메시니는 지난 23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앨범 신보 제목과 같은 <드림박스/문다이얼 투어> 내한 공연을 열었다. 공연기획사 프라이빗커브가 준비한 서울재즈페스티벌 행사인 동시에 지난달 문을 연 GS아트센터의 개관을 기념한 공연이었다.

공연 둘째날인 24일 현장을 둘러보니 아마도 팻 메시니의 오랜 팬으로 추정되는 중노년 연령층이 꽤 많았다. 재즈를 전공하거나 기타 연주 애호가로 추정되는 청년층 관객도 곳곳에서 보였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통합의 광경이 연출됐다. 음악의 힘이자 팻 메시니라는 거장이 만들어낸 시공간이었다.
퓨전재즈로 분류되는 팻 메시니 음악의 특장점은 서정적인 멜로디다.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연주 또한 마치 맑은 밤하늘 아래 별빛을 받으며 완행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정을 연상케 했다. 1000명 가까운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단 한 사람의 손에 이목을 집중시킨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손에 집중됐던 관객들의 눈길은 어느 순간 그의 입으로 향했다. 그는 연주 중간 마이크를 잡고 객석을 향해 음악 이야기를 한보따리 풀어놓았다. 공연장은 일순간 몇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듯한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팻 메시니는 “아시다시피 저는 보통 밴드와 함께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해왔는데, 이렇게 혼자만의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팻 메시니는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상인 그래미상을 20차례 수상한 전설이다. 1959년 그래미상 창설 이래 최다 수상 17위의 기록이다. 이 가운데 ‘팻 메시니 그룹(PMG)’으로 그래미상을 10개 받았는데, 이는 그룹 최다수상 기록 5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전설적인 음악가인데, 어느덧 70대가 된 그의 공연을 ‘한국에서 언제 다시 보겠냐’는 생각에 오랜 팬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은 것으로 보였다. 실제 공연 도중 북받친 감정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미 1970년대 후반에 큰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였다. 1976년 컨템포러리 음악 레이블 ECM에서 솔로 앨범을 발매하며 주목받은 이후 1978년 라일 메이스 등과 <팻 메시니 그룹> 앨범을 발표해 히트를 쳤고, 1979년 PMG의 두번째 앨범 <아메리칸 가라지>는 빌보드 재즈 앨범 분야 1위에 올랐다.
팻 메시니의 위대함은 재즈계의 큰별이 된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을 시도해왔다는 데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진가가 드러났다. 막이 내려간 뒤 첫 앙코르에서 그는 ‘원맨 오케스트라’를 선보였다. ‘원맨 밴드’를 넘어 수십가지의 악기가 기계적 장치에 의해 자동으로 연주되고 그 바탕 위에 팻 메시니가 기타를 연주해 음악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공연 끝날 때까지 가림막으로 숨겨두었던 주인공도 기타 2대였다. 악기는 여러 대이지만 연주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70대에도 여전한 그의 실험정신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공연 도중에는 통상적인 6줄짜리 기타가 아닌 42줄짜리 특수 기타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쟁이나 가야금 같은 소리까지 낼 수 있는 실험적인 현악기였다. 공연 도중 ‘사랑방 토크’에서는 기타 하나로 첼로·비올라·바이올린 소리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튜닝과 연주법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을 곁들이기도 했다. “계속 이야기하면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던 거장의 공연은 세 차례의 앙코르 끝에서야 막을 내렸다. 소탈한 성품과 함께 팬들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그는 이날 공연에서도 환호하는 팬들에게 기타 픽 수십개를 나눠주고 무대를 떠났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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