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 살던 궁궐 옆 '유관순 교실'…140년前 정동 풍경
이화역사박무관·영국대사관·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등 35개 기관

"오르간 송풍구에 유관순 열사가 숨어서 독립선언서를 등사기로 복사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와요"
지난 23일 오후 김성혁 정동제일교회 문화 담당목사가 벧엘예배당의 파이프오르간 송풍실을 가르키며 말했다.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97년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한국 최초 개신교 교회다. 고종이 기거했던 덕수궁 동측 돌담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남쪽으로는 배재학당이 있고 북쪽으로는 이화학당과 담을 마주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서재필 박사, 주시경 선생 등이 이곳에서 예배를 봤다. 3.1운동을 앞두고선 학생들이 숨어 들어 독립선언서를 복사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가 걸었던 서울 중구 정동의 덕수궁 돌담길 주변 문화유산이 지난 24일 늦은밤까지 방문객을 맞았다. 지난 23일부터 다음달 밤까지 서울 중구는 정동의 35개 역사 문화시설을 개방하는 '정동야행'(貞洞夜行)을 진행했다. 2015년 시작한 정동야행의 올해 주제는 '정동의 빛, 미래를 수놓다'였다.


정동은 덕수궁을 중심으로 돌담길로 이어진 '한 동네'다. 덕수궁 옆 주한 영국 대사관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은 같은 담을 쓴다. 정동교회는 이화여고의 '옆집'이다. 이화여고 맞은 편에는 주한캐나다대사관이 있다. 여기서 국립정동극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종이 집무실로 쓴 중명전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서울정동협의체 의장을 맡고 있는 황선엽 구세군역사박물관장은 "정동에 있는 종교, 역사, 문화 기관들은 하나 하나가 역사를 담고 있다"며 "이런 기관들만 연결해도 하나의 축제를 열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35개 기관마다 고유의 역사를 담고 있다"며 "정동야행 기간이 끝나도 찬찬히 둘러보면 근현대 역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학생 유관순이 걸었을 이화여고와 정동제일교회 사이 정동길은 정동야행 기간 '달빛장터'가 열렸다. 달빛장터는 정동로터리에서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까지 이어진다. 정동야행 기간 외부 관람객을 상대로 이화여고 내부 투어도 진행했다. 이화여고 내부에서 유관순이 빨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우물도 볼 수 있다. 이화박물관은 한국 전쟁 때 폭격을 받아 파괴된 메인홀과 1975년 화재로 소실된 프라이홀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다.


구세군역사박물관에서 덕수궁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영국대사관을 향해 좁은 길이 나 있다. 주한영국대사관은 정동야행을 맞아 사전 신청자에 한해 내부투어를 진행했다. 주한 영국대사관 내부에는 1890년대에 영국식으로 지은 벽돌 건물이 2채 있다. 주한 영국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 머무는 관저다. 영국과 조선의 수교 이후 130년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곳으로 매년 영국 국왕의 생일에 관저 앞 잔디 정원에서 축하연을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생일 축하연에는 걸그룹 블랙핑크가 초대받았다. 당시 블랙핑크 멤버들이 대사 관저에서 촬영한 '틱톡' 영상이 온라인 상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주한 영국대사관 옆 성공회 주교좌성당은 정동야행 기간에 성당 내부 투어프로그램과 오르간 연주회를 열었다. 성당내부에는 등록문화재인 경운궁 양이재가 남아 있다. 양이재는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 자제들이 교육을 받던 건물이다. 현재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의 집무실로 쓰인다.


박종훈 성공회 서울대성당 보좌사제는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은 일제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인 건축양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큰 건물"이라며 "로마네스크 양식에 빗살 모양 창문틀과 붉은 벽돌, 기와 지붕 등 한국의 전통 건축기법을 조화시켰다"고 설했다.
이를 포함해 정동야행 기간에는 35개 역사문화시설이 참여해 △야화(夜花, 역사 문화시설 야간 개방 및 문화공연) △야사(夜史, 정동길 체험행사) △야설(夜設, 거리 공연)△야로(夜路, 역사해설투어) △야경(夜景, 야간경관) △야식(夜食, 먹거리) △야시(夜市, 예술 장터 및 공방)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
역사해설투어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어로도 진행했다. 올해는 특히 중구 주민 200여명이 자원봉사자인 '아행지기'로나서 축제 준비부터 운영까지 참여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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