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염전 기업, 미국에 소금 수출 못한다 [세상에 이런 법이]

‘강제 노동’ ‘인신매매’라는 단어는 국제 뉴스에서나 접한다. 탈출하다 잡히면 아오지 탄광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다룬 기사나,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주민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직업훈련 등 명목으로 강제 노동을 일삼고 있다는 미국의 인신매매 보고서를 다룬 뉴스 등에서다.
강제 노동은 국제 문제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뉴스가 우리를 강타했다. 지난 4월2일(현지 시각)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이 한국의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대해 장애인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으로 규정하고 수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취약성 악용, 속임수,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열악한 생활 및 근무조건, 협박 및 위협, 물리적 폭력, 채무 속박, 임금 유보, 과도한 초과근무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지표가 확인되었다”라는 미국의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 소식을 접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21년 태평염전에서 벌어진 일은 임차인의 임금체불 문제에 불과하며 그 이후 강제 노동이 발생한 적이 없으므로 소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가 철회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 신속하게 태평염전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도대체 태평염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부와 지자체 주장처럼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부당한 것일까? 염전 노동자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신안군 염전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다는 시각장애인의 편지 한 통에서 수사가 시작했다. 소금 장수로 위장해 잠입한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강제 노동 피해자 2명을 구출했다. 이 수사로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수십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한 ‘염전 노예’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주요 외신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한 세계시민들은 기사에 등장하는 ‘코리아(Korea)’가 ‘북한(North Korea)’이 아니라 ‘남한(South Korea)’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인권이 경제’라는 법은 세상에 존재한다
염전 노예 사건으로 염전 주인의 인권침해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피해 장애인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절박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피해 장애인을 구출하지 못한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었다. 인권침해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대로 구조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합동 조사로 더 이상 염전 노예는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021년 제2의 염전 노예 사건이 터졌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염전을 소유한 기업이다. 가해자는 태평염전으로부터 염전을 임차해 운영하며 장애인을 착취했다. 이 가해자는 2014년 장애인 노동력 착취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동일 범죄를 일으킨 가해자에게 다시 임차해준 태평염전의 사회적 책임론이 불거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영역일 뿐 법적 책임 영역은 아니므로,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법은 존재한다. 공급망 실사법이 그렇다. 기업의 공급망 과정에서 강제 노동 등 인권침해가 벌어질 경우 기업에 책임을 묻는 법이 미국·캐나다·멕시코를 넘어 유럽연합(EU)에도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에도 2023년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인권이 경제’라는 법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권 보호에 소홀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비호하기에 급급한 정부와 지자체의 분발을 촉구한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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