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김문수 특별한 인연, 열흘 뒤 대선 영향력은?

최미화 기자 2025. 5. 24. 17: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D-10일 24일 오후7시30분 김문수 대선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 달성군 사저로 예방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서거 50주기 하루 앞두고, 옥천 생가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6.3조기대선을 열흘 앞둔 D-10일인 24일 오후 7시30분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구시 달성군 사저에서 생활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한다. 김문수 대선후보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같은 점과 다른점, 동지적 신뢰와 정치적 차이와 충돌 그리고 미래 등에 대해서 알아본다.

◆김문수 대선후보가 걸어온 길

김문수 대선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서 강렬하게 반대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라면 나도 뇌물죄라고 하면서까지 박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한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951년에 '추로지향의 고향'으로 꼽히는 영천에서 태어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대구에서 경북중고를 나와서 서울대 경영학과를 24년만에 졸업했다. 민주화운동 등으로 구속과 투옥을 거듭한 민주화유공자인 김문수 대선후보는 1980년대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서 활동하며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운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유신헌법에 반대했으며, 대통령직선제 관철을 위해 투쟁했다. 1980년 5공 시절에는 삼청교육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지금의 아내가 된 설난영 동지의 도움으로 다락에 숨어서 계엄을 피해갔다.

이후 김문수 후보는 소련이 망하는 것을 보고, 좌파에서 전향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보수우파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YS(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19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보수 정치의 큰 그릇으로 전환했다. 이후 경기도 부천소사에서 처음 시작할 때 3%의 지지율로 DJ비서실장에 국정원장까지 역임한 박지원 민주당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3선 의원을 역임했다. 이후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여 유시민 현 노무현재단이사장을 꺾고 당선되었다. 재선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무한돌봄사업의 국내 첫 도입, GTX도입, 경기도 판교와 광교테크노밸리 조성, 피겨여왕 김연아-역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장미란-이국종 아주대교수의 권역별외상센터 지원 등 수많은 성과를 잡음하나 없이 이뤄냈다.

김문수 대선후보의 경기도지사 시절의 업적은 홍보를 하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 않다가 뒤늦게 하나하나씩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소방교와의 통화에서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문수입니다" 전화 통화의 내용도 사실은 그 전화통화를 하기 며칠전 노숙자의 동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119 전화대응 메뉴얼을 만든 것이 제대로 잘 작동되는지 도지사가 직접 현장점검 차 이뤄졌던 것이고, 그 메뉴얼에는 누구든지 119로 전화가 걸려오면 (비록 장난전화라 하더라도) 관등성명을 대도록 되어 있으나 그 소방교가 전화를 건 도지사가 4번씩이나 '도지사임을 밝혔으나 끝까지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직장 갑질이 아니라 오히려 직장 을질을 당한 것이 아니냐, 문책해야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비등했으니 김 도지사가 당시 일절 문책하지 말라고 , 그 자리에 그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최근들어 팩트체크 되고 있다.

김문수 대선후보는 지난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파면으로 인해서 '대통령 궐위' 상태를 맞아서 60일(6월3일) 내에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됨에 따라 나흘 뒤인 8일에 고용노동부장관직을 사퇴하고,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현재 대통령선거에 나서겠다고 뜻을 밝힌지 24일(D-10일) 현재 47일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반면, 박근혜(1952년생)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가난을 몰아내면서 산업화를 달성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2남1녀 중 장녀이다. 1974년 광복절 행사장에서 문세광의 총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도우면서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하며 통진당 해산 등 여러 정책을 추진했고, 보수 정치의 대표 인물로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된 비리 및 부패 혐의로 탄핵되어 2017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파면되었으며, 이후 구속과 재판 과정을 겪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외교 성과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도모했으나, 임기 탄핵파면 사태로 인해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했다.

△창조경제와 경제 활성화 정책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이는 혁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이었다. 창조경제는 ICT, 문화, 기술 융합을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으로, 스타트업 지원과 벤처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 대구시 북구 칠성동 옛 대구제일모직 부지에 세워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센터를 전국에 설립해 지역별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공무원 연금개혁(2015년)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려 했으며, 이는 공무원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레일의 흑자 전환과 한국전력의 재무 개선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꼽힌다. 특히, 코레일은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경영 효율화를 통해 최초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방산비리 척결과 원전 비리 근절을 위한 노력은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외교 및 안보 분야 성과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한중 FTA(2015년)와 한-캐나다 FTA(2014년)를 체결하며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했다. 특히 한중 FTA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또한, 베트남 고속도로 수주(300억 달러)와 우즈베키스탄 가스전 수주(3조 3천억 원) 등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따내며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

안보 분야에서는 사드(THAAD) 배치 결정(2016년)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2016년)이 주요 정책으로 꼽힌다. 경북 성주군에 사드 배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의 일환이었다.

△사회·문화 정책과 역사적 의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국정 목표로 삼아 문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려 했다. 각 시도별로 문화융성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는데, 경상북도 문화융성위원회가 새로 생겼다. K-POP과 한류를 활용한 문화 외교는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통합진보당 해산(2014년)과 전교조 법외노조화(2014년)는 국가 안보와 법치주의를 강화하려는 조치로 평가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2016년) 시행은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주요 성과로 꼽힌다. 이 법은 공무원의 부패를 방지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14일 징역 20년·벌금 180억원을 확정 선고를 받았지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에서 중형을 확정하면서 특검이 불복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은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8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을 파기환송하면서 강요죄와 블랙리스트 관련 일부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서는 무죄 취지로 판단했고 파기환송심도 같은 취지로 판결을 했다. 특검은 무죄 부분 중 직권남용 혐의에만 다시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재상고심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문수와 박근혜, 박근혜와 김문수

김문수 대선후보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D-10일인 24일 오후 7시30분께 박 전 대통령의 달성군 사저에서 만난다. 김문수-박근혜의 정치적 인연은 1990년대 말부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전신)에서부터이다. 2000년대 초반, 차떼기당으로 낙인 찍힌 한나라당의 위기를 천막당사로 들어가면서 건져낸 '구원투수'로 활약하며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김문수는 같은 시기 한나라당 내에서 노동운동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노동자 권익과 현실주의를 강조하며 활동했다. 두 사람은 보수 진영의 핵심 인사로서 이념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협력했다. 특히 2012년 새누리당(한나라당의 후신)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가 대세론을 형성하며 대권을 향해 나아갈 때, 김문수는 박근혜를 지지하며 당내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정치적 신뢰관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24일 오후 7시30분께 달성군 사저로 예방한다. 어떤 메세지가 나올지 기대를 모으고있다. 연합뉴스

김문수-박근혜 두 사람의 관계가 늘 하모니를 이룬 것만은 아니다. 갈등도 있었다. 2012년 8월 대구·경북(TK)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김문수는 박근혜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당원들의 반발을 샀다. 한 50대 남성이 김문수를 멱살잡으며 "너 때문에 박근혜표가 다 떨어지겠다"고 소리칠 정도였다. 김문수는 당시 경선 룰을 완전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로 바꾸자고 주장했으나, 친박계가 이를 거부하며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2016년, 충성의 갈림길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떠나고 등을 돌렸다. 등에 비수까지 꽂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김문수는 달랐다. 새누리당 내에서 많은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 할 때, 김문수는 "탄핵은 마땅히 기각돼야 한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반탄 집회를 이끌었다. 김문수는 오히려 "촛불을 탄핵해야 한다"는 강하게 나갔으나 탄핵은 결국 인용되었다.

당시 김문수 현 대선후보의 측근들이 박근혜를 비판하며 대권을 노리라고 종용했으나, 김문수는 '죽으면 죽으리라'며 이를 거부하고 자리를 피했다. 김문수의 '의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2024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김문수는 "박근혜의 탄핵은 잘못됐다"며 "그분이 뇌물죄라면 나도 뇌물죄"라고 발언, 여전히 박근혜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2025년, 박사모의 지지와 김문수의 대권 도전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최종선출(5월 11일)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주목받았다. 박근혜 지지 단체인 박사모 총연합은 김문수를 "박근혜의 청렴과 결기를 계승할 지도자"로 칭하며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김문수가 박근혜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가려는 상징적 행보로 해석된다.

박근혜와 김문수의 인연은 보수 정치 내에서 동지적 협력으로 시작되었으나, 2012년 경선에서의 갈등과 2016년 탄핵을 거쳤으나 김문수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열흘 남은 6.3조기대선에서 김박 연대가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지 주목받고 있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