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 키워드 ‘네옴시티’[양정대의 전쟁(錢爭)외교 시대]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석유가 부족해서가 아닌 이유로 석유시대도 끝날 것이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린 ‘오일 파동’의 주역이자 ‘중동 석유왕’으로 불렸던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한 말이다. 사우디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출범부터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었던 그조차도 진작부터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견하며 대안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사우디는 지난 10여 년에 걸쳐 완전한 탄소중립을 통한 지속가능발전과 외교적∙경제적 균형외교를 국가적 목표로 확립했다. 특히 ‘비전 2030’에 경제 다각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담았는데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최첨단산업 유치와 문화·관광산업 육성 등이 핵심이다. 석유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치열한 미래 먹거리 경쟁에 적극 뛰어든 것인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중장기 초대형 프로젝트가 바로 ‘네옴시티’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2017년 실권을 장악한 뒤 본격 추진한 네옴시티를 두고 그간 적잖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1조 달러를 투입해 170㎞에 걸쳐 500m의 초고층빌딩을 연결하겠다던 ‘라인’ 프로젝트가 2.4㎞로 축소됐다는 보도 이후 사우디 내부에서조차 “‘라인’(선)이 ‘닷’(점)이 됐다”는 자조가 나왔다. 사우디 정부의 공언과 달리 예산도 일부 축소되자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을 의심해온 목소리는 더 커졌고, ‘중동 특수’에 대한 각국의 기대도 다소 식은 듯하다.
하지만 네옴시티가 사우디의 미래 전략에 머물지 않고 중동 지역의 경제∙외교안보 질서 재편의 지렛대가 될 것이란 평가는 여전하다. 우선 강력한 전제군주의 장기 집권과 이슬람 수니파의 본산이라는 사실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무함마드는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데다 세계 최고의 자금 동원력을 갖추고 있어 그와의 교류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는 경제적 성과와 직결될 수 있다. 주변 국가들엔 홍해와 요르단 서부, 예루살렘∙베들레헴 등을 일일 관광권에 둔 네옴시티의 입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무함마드가 국정 전면에 나선 이후 여성에 대한 차별 시정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개방 정책 등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엄격한 종교국가의 폐쇄성이 두드러졌던 사우디의 급격한 변화를 두고 영국 BBC방송은 “무함마드 빈 살만은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공식 왕자만 7,000명이 넘는 사우디에서 ‘리츠칼튼 호텔 감금 사건’을 통해 다른 왕족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쥔 그로서는 일반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수다. 국민의 70%가 30세 미만인 ‘젊은 국가’여서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의 개방 정책에 대한 경험치도 상당하다.

UAE 소재 민간 싱크탱크 ‘트렌드 리서치’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네옴시티는 빈살만의 정치적 입지와 맞물려 있어 애초 계획대로 진행되느냐로 성패를 판단할 수 없다”며 “계획의 축소나 수정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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