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약약강을 못 참아요”…그림책으로 세상과 맞서는 허정윤 작가의 따뜻한 반란 [인터뷰]
동물·난민 이슈 등 작고 연약한 존재들 조명
우정을 그린 ‘껌딱지 친구, 껌지와 딱지’ 발간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소중한 사회 되길”
“동물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사람한테도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해요. 첫 시작은 동물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학대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국내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동물학대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 그림책 작가 허정윤 씨의 발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조선 중기의 대표 문인 남매인 허난설헌과 허균의 12대 후손이기도 한 허 작가는 그간 이런 소재를 부드러운 문체로 동화책에 담아 왔다.
그는 동물권을 되돌아보게 하는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고발하는 ‘63일’, 난민 문제를 소재로 한 ‘손을 내밀었다’ 등의 작품에서 이른바 ‘강약약강’ 사회를 응시했다. 아동용 그림책이지만 어른이 봐도 큰 울림이 있는 이유다.
그가 쓴 ‘손을 내밀었다’는 아동 도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볼로냐 라가치상’ 2025 어메이징 북쉘프 지속가능성 분야에 선정돼 내년 미국 뉴욕 UN 본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허 작가는 “작은 존재가 강한 자에게 맞거나 짓밟히는 걸 못 참는 편”이라며 “동물을 시작으로 작고 연약한 존재들을 소중히 대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사회가 이들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지난달 18일 발간된 그림책 ‘껌딱지 친구, 껌지와 딱지’는 준비하는 데에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허 작가는 “원고 수정이 제일 많았던 작품”이라고 했다.
허 작가는 그림책 속 모든 장면을 손수 제작했다. 껌지는 분홍색 점토를 손으로 빚었고, 딱지는 껌 종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은박지로 만들었다. 책 속 배경이 되는 마을도 직접 설계했다. 상점과 건물 지붕에 펠트를 한 조각 한 조각 이어 붙이고, 건물 안 식탁과 침대, 옷걸이까지 인테리어 하나하나 디테일을 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더지 가족이 살고 있는 땅굴은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공지능(AI)이 뚝딱 그림을 그려내는 시대에 손으로 만든 그림책은 의미가 남다르다.

허 작가의 대표작은 ‘코딱지 코지’ 시리즈다. 주인공 ‘서영이’의 콧구멍에 살던 코딱지 코지가 콧구멍 밖으로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담았다. 점토를 활용해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도 코지 시리즈 덕분이다.
허 작가는 “아빠가 코를 후비며 코딱지들에게 여행을 보내줘야 한다고 장난치셨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게 된 책”이라며 “코딱지의 끈적끈적한 느낌이 점토와 비슷해 구현하게 됐다”고 했다.
교육학을 전공한 허 작가는 창의적 놀이에 교육을 접목한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비단 작품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미래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다.
그는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수술을 시켜주고 배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학교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를 발굴해 (보여주며) 아이들도 어른도 서로서로 응원할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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