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싫은 것' 아는 것도 중요하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5. 5.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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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다양한 특성을 분명하고 일관적이게 정의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상태를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개념 명확성(self-concept clarity)이 높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자기 개념 명확도가 낮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정의하지 못하고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긍정적인 자기지각인 자존감이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쁜 결과물들과 관련을 보이는데 어쩌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자존감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반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외부의 영향에 의해 자존감이 흔들리는 정도가 비교적 덜 했다는 연구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 역시 어렸을 때 자연스러운 실제 나의 모습을 잘 파악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외부에서 좋다고 하는 모습들을 최대한 따라하고 거기에서 오는 보상이나 긍정적인 반응들을 기반으로 자존감을 높이 쌓았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내향적인 편이지만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열심히 외향적인 척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면 거기에 기대어 기뻐하고, 반응이 좋지 않다면 위기감을 느끼는 위태로운 시간을 상당히 오래 보낸 것 같다.

이렇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으면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고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광고에 더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명품 소비나 유행이 쉽게 번져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것이 ‘자기 통제’에도 부적 영향을 준다고 한다. 통린 장 북경대 심리학자 연구팀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미래의 자신’을 현재 자신의 연장선으로 보기보다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 마치 타인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높았다.

이런 특성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부 설명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장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나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것과 관련이 있고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못하면 끈기있게 노력하는 행동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손대기만 하며 오랜 시간 갈아타기만 하는 경우 어쩌면 자기통제력 자체가 낮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걸쳐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이런 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못지 않게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므로 기분 나쁜 경험이나 실패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경험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Jiang, T., Wang, T., Poon, K. T., Gaer, W., & Wang, X. (2023). Low self-concept clarity inhibits self-control: The mediating effect of global self-continuity.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9(11), 1587-160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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