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과 단절, 응답과 침묵, 생성과 소멸…번개의 재발견

서정민 2025. 5. 2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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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곽소진 작가(32·사진1)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술원의 인터미디어과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작업을 시작한 그는 2020년부터 비디오 작업과 오브제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오가는 다매체적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수상자가 발표되고 이번 개인전 ‘클라우드 투 그라운드’를 준비하기까지 시간은 짧았지만 곽 작가는 ‘낙뢰’라는 멋진 소재를 발견했다.

“낙뢰는 흔히 하늘에서 땅으로 일직선으로 내리치는 장면으로 기억하죠. 하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낙뢰의 실상은 그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이에요. 낙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땅에서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신호들을 보내고, 순간적으로 이것이 응집되면서 번개가 발생한다죠. 즉, 번개의 길은 하늘과 땅, 공기와 구름, 전자와 입자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적인 시간이에요.”

그래서 작가는 직접 번개와 유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4분30초짜리 영상 ‘만지기, 구름에서 땅까지’이다. 작가의 작업실 지붕 위에 작은 테슬라 코일을 설치하고 전류 방전을 통해 번개가 치는 것처럼 해놓고 그것을 만지는 듯한 손을 기록한 영상이다. 카메라 원근법으로 코일의 작은 바늘은 먼 산에 설치된 거대한 피뢰침처럼 보인다.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번개는 마치 그림자놀이처럼 마술사의 손에서 놀아난다. “낙뢰를 먼 거리에서 목격하는 일은 동시에 발생하는 연결과 단절, 응답과 침묵, 얽힘의 생성과 소멸을 뒤따르는 일”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사진 2
벽에 걸린 ‘새들이 늘어진 전깃줄에 앉아있다’도 신선하다. 집집마다 있는 분전함을 작품화한 것인데, 작가에 따르면 이 분전함 속 전선의 얽힘은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그러니까 분전함 속은 설치기사마다 다른, 일종의 아트 피스다.

전시공간 한쪽을 차지한 ‘이진(二進)탐색(사진2)’은 시간과 소리, 이미지가 조합된 설치작품이다. 검은 바닥과 반짝이는 비즈를 붙인 흰 벽은 번개와 천둥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의 조건을 탐구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20~30분 간격으로 바뀌는 조명 때문에 흰 벽은 무수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그 움직임을 받아내는 검은 바닥 역시 수시로 어둠과 밝음을 반복한다. 이 공간을 뚫고 작가가 직접 숲에서 채집한 새소리가 울린다. 어느 쪽이 하늘이고 어느 쪽이 대지인지 모르겠다.

“이 작품을 설치하면서 제가 가장 호사를 누렸죠. 아무도 없을 때 여기 앉아서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달빛을 받으며 깜깜한 숲길을 걷는 느낌이 들거든요. 어느 쪽이 달이고 길인지 헷갈리는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저는 참 좋더라고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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