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옥죄는 달콤한 유혹...제주 대출 차주들의 눈물
부동산 침체 악용 ‘건설업계 피해 우려’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김민석(가명.47)씨는 요즘 밤잠을 설칠 정도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공사 현장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출 문제까지 떠안았기 때문이다.
업계 인맥을 통해 알게 된 사업자로부터 일감 제공을 약속받은 것이 화근이 됐다. 도내 건설업계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면서 사업체 유지를 위해 덥석 수락한 것이 고통의 시작이었다.
사업자는 특정 공사의 수주를 약속하며 대출 차주를 제안했다. 당장 자금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이유를 댔다. 3개월 후 대출 차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하겠다며 설득했다.
대출 차주는 돈을 빌리는 채무자를 의미한다. 본인의 신용이 좋지 않거나 대출 한도에 제한이 있는 경우 제3자를 대출 차주로 내세워 돈을 빌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김씨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했다. 당장 현장이 돌아야 사업체 유지가 가능했기 때문. 결국 김씨는 제2금융권을 통해 12억원가량 담보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약속한 석 달이 지나도록 차주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자와 원금 상환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부동산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주에서 건설 수주를 대가로 대출 차주를 하다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정 법인을 이용해 육지부에 있는 타운하우스 물건을 담보로 대출 승인이 이뤄졌다. 해당 법인의 대표는 다름 아닌 이씨였다.
정작 이씨는 해당 부동산을 본 적도 없었다. 이씨 역시 약속된 차주 변경 기한이 지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상환 통보를 받고 있다.
실제 차주는 따로 있어도 개인과 법인이 명의를 제공했다면 원칙적으로 대출 변제 의무가 발생한다. 이자나 원금 상환을 하지 못하면 담보물에 대한 압류 절차 등이 이행된다.
건설업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명의를 빌려준 이유는 돈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로 사업체마다 일감이 크게 줄면서 이를 악용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제주지역 주택건설 착공 실적은 426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72호와 비교해 71%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허가 물량은 959호에서 341호로 3분의 1수준이 됐다.
2022년 1만호를 넘어서던 주택 건설 실적도 지난해에는 3264호로 추락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5017호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건설업계에 매서운 찬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공사 수주 제안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며 "명의도용 부분이 걸리기는 했지만 당장 현장을 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기관에서 이자와 원금 상환 연락이 올 때마다 화가 치밀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내가 어리숙하게 당한 것 같아 주변에 말도 못 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관련자들은 건설업계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대출 차주를 제안한 사업자에 대한 고발을 검토 중이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유사 피해에 대한 규모도 명확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