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우려’에 발톱 숨긴 민주당의 사법 개혁, 대선 후 벼르나

이태준·정윤경 기자 2025. 5.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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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중도층 민심 중요, 지금은 때 아니란 데 동의”…일단 멈춘 ‘이재명표 사법 개혁’
당혹스러운 법원 “사법과 입법의 정면충돌 막아야”…내부 분열 우려도

(시사저널=이태준·정윤경 기자)

당내 격앙된 분위기 속에 강하게 밀어붙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개혁' 드라이브가 6·3 대선을 열흘 정도 앞두고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중도층 표심'을 잃어선 안 된다는 당내 온건파 의원들의 우려와 선대위 영입 인사들의 '신중론'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면서다. 사법 개혁의 수위를 두고 당내 의견 차가 많았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월3일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재차 사법부를 향한 공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시사저널 박은숙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도 이견"

"국회가 가진 권한을 모두 사용해 사법 대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겸 상임총괄선대위원장), "법사위원장 임기 내 조희대 특검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민주당은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자신감과 결기를 보여왔다. 당내 지도부는 물론 이재명 후보도 5월14일 부산·경남 지역 유세에서 "지금도 국가기관에 숨어 민주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그들을 반드시 찾아내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그 법정은 깨끗한 법정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법부를 겨냥했다.

그러나 5월 중순을 정점으로 민주당은 사법 개혁에 대한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지나치게 사법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도층 민심 잡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선거 전에 굳이 사법 개혁을 강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 좋을 것이 없지 않냐"면서 "중도층 민심을 고려해 다들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도 찬반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2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법관대표회의 이후 조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42%가 '해야 한다'고 답했고, 36%는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모르겠다'는 응답도 22%였다. 특히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조 대법원장 사퇴에 '찬성'(40%)하는 의견이 약간 많았지만 '모르겠다'(32%), '반대'(28%)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인 조 대법원장 특검에 대한 의견 차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희대의 사법 농단에 대해 어떻게든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의원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의원도 상당수 있다. 법사위 내에서도 온도차가 감지된다"는 당 관계자의 설명이 당내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법부 총공세에 제동이 필요하다는 당내 영입 인사들의 목소리도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법, 탄핵, 청문회는 (민주당의) 하나의 정치 공세로 보고 (이 주장이) 안 나올 줄 알았다"며 "특검, 탄핵 등은 신중을 기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강금실 선대위원장과 함께 "특히 특검법 발의는 너무 과하다"는 뜻을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대선 전에) 본회의까지는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위원장과 함께 '보수 영입' 인사로 꼽히는 권오을 국민대통합위원장은 YTN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서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대법관을) 증원하는 것은 우리가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이 후보가) 잘나가고 있는데 사법부 흔들기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라며 "오히려 표를 갉아먹고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룸살롱 접대 의혹'이 제기된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총공세도 '일단 멈춤' 상태에 들어간 분위기다. 대선 막바지에 불 역풍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감사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 (당이) 사진을 직접 공개하면서 사법부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는 게 추후 대선 상황에서 역풍으로 작용할까 우려된다"며 "아예 공개하려고 했다면 더 확실한 증거를 내놨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털어놨다

앞서 김용민·김기표 민주당 의원은 지 부장판사가 유흥주점에서 직무 관련자로부터 여러 차례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 부장판사가 1인당 100만~20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 룸살롱에서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지 부장판사가 이를 부인하자 노종면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의혹과 관련한 사진을 공개했다. 다만 해당 업소는 룸살롱이 아닌 단란주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공개된 사진만 봤을 땐 여성 종업원과 함께했거나 접대를 받았다는 정황으로 보긴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이 "지귀연 판사가 접대 받았다"고 지목한 '룸살롱'은 '단란주점'으로 판명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이 같은 분위기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이 확정되면 사법 개혁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한 의원은 "사법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대선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선 민주당은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기 위한 '특검법'부터 추진할 전망이다. 5월14일 법사위에 상정된 '조희대 대법원장 등에 의한 사법 남용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조희대 특검법)은 조 대법원장의 사법권 남용 및 대선 개입 혐의를 수사하는 것이 골자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법과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사법부 힘빼기'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대법원 판결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유를 규정한 헌재법 68조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도 헌재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현행 3심제로 이뤄지던 재판이 사실상 '4심'으로 바뀌게 된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증원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현행법은 대법관 수를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으로 규정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이 업무 과부하로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점을 개정 이유로 들었다. 장 의원을 포함한 총 10명의 민주당 의원은 "대법관 1인당 연간 수천 건에 이르는 사건을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따라 개별 사건에 대한 충분한 심리와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어 상고심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이후에도 불거질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종식시키기 위해 민주당이 사법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동욱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회도 이재명 한 명을 위한 방탄, 사법부도 이재명 한 명을 위한 개혁, 이러면 공감하기가 어렵다"면서 "사법부 개혁이 연성 독재로 가기 위한 전제적 움직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문수 대선후보도 경기 북부 유세에서 "저는 방탄조끼가 필요없다"며 민주당의 사법 개혁은 이 후보의 '방탄법'과 다름없다는 취지로 연설했다.

5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불출석 사유서를 읽은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조희대 특검'부터 시작해 '사법부 힘빼기'로…현직 판사 "정치권 공세 걱정된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향한 민주당의 거친 공세에 법원 내부에는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법관 개인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사법부를 향한 공세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법조계 원로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전직 회장 9명 역시 민주당의 공세에 삼권분립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비판적 입장문을 냈다. 이 성명을 주도한 김현 전 회장은 5월1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그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민구 전 부산지법원장은 페이스북에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면서 "선출됐다는 이유로 타 권력을 억누르고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강 전 원장은 "입법권·행정권이 유착하면 그 결과는 독재로 귀결된다"면서 "이때 사법부마저 정치적 압력에 무릎을 꿇게 되면 그 어떤 국민도 헌법의 보호 아래 놓일 수 없게 된다"고 부연했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주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와 노행남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 등이 실명을 걸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조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하여 대법원장은 책임져야 한다.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재경지법 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보신주의적 성향이 강한 법관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법원은 정치권과의 확전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조 대법원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사법 개혁까지 추진되면 사법부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부와 입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원행정처 등 법원 핵심 부서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조희대 대법원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이 자신에 대한 청문회 추진, 탄핵소추, 특검 추진이 이뤄지는 상황에 스스로 입장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법원공무원 노조가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법원 내부에서 그의 거취에 대한 압박이 나오는 것도 조 대법원장 입장에선 부담인 상황이다. 과거 김용철 전 대법원장, 김덕주 전 대법원장 등이 물의를 빚은 책임으로 사퇴한 전례가 있는 만큼,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증폭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건 정치권의 외풍에 의해 법원 내부가 이념 성향에 따라 분열되는 것이다. 그 우려는 5월26일 진행될 전국법관대표회의로 옮겨지고 있다.

당초 법관들의 총의를 모으겠다는 계획이 자칫 법원 내부의 분열상만 보여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회의 개최의 가장 큰 화두였던 이 후보 유죄 취지 파기환송 건에 대한 언급에 법관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으로'라는 문구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낸 보도자료에서 빠졌다. 이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의 내용과 관련해 이미 내부에서 반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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