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때 2만명 최대 감축… 카터 철수 추진에 박정희 ‘150분 설전’
2008년부터 2만8500명 유지
트럼프 1기때도 시도…무산돼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한미동맹의 핵심 전력인 주한미군은 두 나라의 정권이 바뀌거나 국제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규모와 역할이 변해왔다. 6·25전쟁 직후 32만5000명에서 1955년 8만5000명이 배치된 이래 몇 차례 축소되다가 2008년부터는 2만8500명 규모를 이어왔다.
23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1953년 6·25전쟁 휴전 후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따라 미군 8만5000명이 한국에 배치됐다. 이후 가장 큰 감축은 1970년 닉슨독트린에 따른 감축이었다.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며 ‘아시아 주둔 미 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방침에 따라 1971년 3월 주한미군 7사단 병력 2만여 명을 전격 철수시켰다. 데탕트(냉전 해빙기) 국면이 큰 영향을 미쳤다. 4만3000명까지 줄어든 주한미군의 규모가 다시 한·미 외교의 쟁점이 된 것은 지미 카터 행정부 때다. 카터 행정부는 1978년부터 5년간 3차에 걸쳐 주한미군을 철군키로 했다. 이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카터 대통령과 150분간 설전을 벌일 정도로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터 행정부의 계획은 의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1989년 조지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계획인 ‘넌-워너 수정안’(주한미군 감축 5개년 계획안)을 추진했다. 1단계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7000명을 감축하는 등의 3단계 방안을 마련했지만 1단계만 이뤄지고 이후 북한 핵 문제 등이 불거지며 빌 클린턴 행정부가 감축 계획을 보류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미는 3단계에 걸쳐 1만2500명의 주한미군을 줄이는 데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두 나라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순환 배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규모가 2만8500명으로 굳어진 것은 2008년 4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 정상회담, 그리고 그해 10월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북한의 위협 등을 감안해 주한미군 규모를 2만8500명으로 유지한다는 협의가 이뤄지면서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주한미군 감축 시도가 있었지만 미 의회 등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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