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야기- 진주 대동공업] 6부 김삼만과 기공일생(機工一生) ⑫ 진주상공회의소 회장
기업 성장과 함께 사회적 지위 높아져
진주상의 4대 회장 맡아 지역사회 헌신
4개 도 26개 시·군 서남지구 개발 추진위
대전~삼천포 연결 212㎞ 대삼선 계획
경남도청 진주 환원 추진했으나 좌절

“집에 수많은 황금이 있어도 하루에 세끼 식사하고, 호화로운 방이 있어도 베개와 침대 하나면 족하다”는 오인보 화서그룹 회장의 잠언, 화서촌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이래호/
마을에서 직영하는 기업의 규모가 중국 재계 그룹 96위까지 성장했다. 중국 농촌 성장의 모델이 돼 강택민, 호금도 등 중국의 역대 지도자가 찾는 마을이었다.
오인보 촌서기는 “집에 황금 수만톤이 있어도 먹는 것은 하루 세 끼이고, 호화로운 집이 있어도 잠잘 때는 작은 침대 하나면 족하다”는 표현을 했다. 이 표현의 깊은 뜻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이다.

1965년 진주에서 삼천포까지 이어지는 진삼선 철도 개통식 관련 사진./코레일 기록사진/
◇ 진주 상공회의소 제4대 회장에 선출되다
김삼만이 설립한 대동공업사도 전국에 알려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농기구 회사라고 할 정도로 성장했다.
기업의 이미지와 가치가 상승되자 김삼만의 사회적 위치도 높아졌다. 김삼만 역시 지역사회와 각종 사회단체에 봉사와 헌신을 많이 했다.
1957년 1월, 김삼만은 주식회사 대동공업사 대표로 진주 상공회의소 부회장에 선출되면서 활동을 시작, 그후 1963년 1월부터 1964년 7월까지 회장을 지냈다. 1년6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회장 재임시 ‘서남지구 개발 추진위원회 설립’과 ‘경남도청을 부산에서 진주로 환원’하는 초대형 이슈를 제시했다.
◇ 서남지구 개발 추진위원회 설립
진주 상공회의소 회장 김삼만은 1963년 경남, 전남, 전북, 대전 등 지리산권에 접하고 있는 4도 26개 시·군이 참여해 지리산권 개발을 위한 ‘서남지구 개발 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
예로부터 충청남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남부지방 3도를 삼남(三南)이라 했다. 서부경남과 동부전남, 남부충남지역을 일컬어 삼남의 서부지역에 접한다는 뜻에서 서남이라 칭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시·군은 진주, 충무, 삼천포, 남해, 사천, 고성, 거제, 의령, 산청, 함양, 진양군, 남원, 구례, 곡성, 장수, 진안, 무주, 순천, 승주, 광양, 대전, 금산 등 경남, 전남, 전북, 충남 등 4개 도 26개 시·군이다.

1965년 12월에 사천에서 삼천포까지 가는 기차 개통 관련 신문보도 도표. 당시 철도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했다. 진주 개양역에서 사천역까지 10.5km는 1953년 5월 개통됐다. /한국철도공사DB, 동아일보 1965년 12월 7일자/
◇ 대전, 삼천포 철도 개설
인구 증가로 도시가 팽창하면 자연스레 교통도 발달하게 된다.
1905년, 바다를 접한 삼천포(현 사천시)도 인근 부산, 마산, 통영, 여수, 목포 등지의 도시와 연결하는 뱃길이 열렸다. 삼천포에 도착한 사람들 대부분의 목적지는 서부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인 진주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고 물자 운송도 많아지자 삼천포와 진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철길을 개설하자는 논의가 1910년, 1916년에 있었다. 1917년에는 삼천포에서 진주를 지나 경북 김천까지 철도를 개설하는 ‘김삼선’ 계획도 수립했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산업 철도의 필요성에 따라 김삼선 개설을 결정했다. 노선이 경유하는 지역은 삼천포-진주-산청-안의-거창-김천까지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1931년 일본이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륙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1941년, 조선총독부는 삼천포항과 일본 하카타항과 직항 해운 개설을 검토하면서 ‘김삼선’ 대신 대전에서 삼천포를 잇는 ‘대삼선’이라 해 대전, 금안, 함양, 산청, 진주, 삼천포를 연결하는 212㎞ 철도 노선 신설을 수립하고, 1943년부터 토목공사와 터널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공사도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의 말기에 여러 가지 경제요인으로 1944년 9월, 공정률 10% 정도에서 중단됐다.
1953년 이승만 정부 때 진주에서 사천까지 철도를 신설했고, 1965년에 삼천포까지 연장해 ‘진삼선’ 철길이 비로소 개통됐다.

1966년 11월 9일 김천에서 진주를 거쳐 삼천포까지 연결되는 김삼선 기공식 관련 보도 기사./경향신문 1966.11.9./
◇ 남부내륙철도
남부내륙철도는 김천에서 거제까지 고속철도 운행을 하는 철도 노선을 말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김천에서 성주군, 합천군, 진주시, 고성군, 통영시를 거쳐 종착역이 거제시이다. 총연장 178㎞로 이 노선이 개통되면 진주에서 서울 간 거리를 1시간 이상 단축하는 경로이다.
김삼만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이 추진한 남부지방의 개발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교통망 확장 ‘대삼선 철도’계획이 60년이 지난 지금 ‘남부내륙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남, 전남, 부산 등 지방 자치단체가 ‘남해안 관광개발’을 위해 연합 상품도 추진하고 있다.

1983년 경남도청 이전 당시의 주변 풍경. 우측 중앙 원안이 지금의 경남신문사 본사 사옥이다./창원향토사 사료전시관/

경남 도청 창원 이전 경남신문 기사./경남신문 1983년 7월 1일자/
◇ 김삼만 회장의 경남도청 진주 환원 운동
1963년, 진주 동산예식장에 4개 도, 26개 시·군 시장, 군수들이 모였다.
낙후된 지리산 주변의 고령토 개발, 관광 개발, 생태계 보전, 교통망과 항만 확충 등 지역개발을 추진해 주민들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자고 결의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행 내용으로 지리산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경남도청 진주 환원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김삼만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1963년은 박정희 정부가 갓 출범했고, 국가에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전방위로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주라는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국가 시책에 버금가는 서남지구 개발 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경남도청 진주 환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자 박정희 정부는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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