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색깔'로 위기 탈출한다… 응원봉에도 담긴 39년 기술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LG화학 엔지니어링 소재사업부의 컬러 개발팀 취재

LG 로고의 빨간색을 만들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곱게 접은 약품 종이 위로 붉은 색 계열 염료가 조금씩 담겼다. LG화학 엔지니어링 소재사업부의 컬러 개발팀에서 30년 넘게 색깔을 책임진 이재덕 계장의 섬세하면서도 빠른 손길에 금세 조합이 끝났다. 커다란 비닐 봉지에 넣고 벅벅 비비니 벽에 붙어 있는 로고와 똑같은 색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원료를 넣고 다시 섞으면 컬러 EP를 만들 준비가 끝난다. 고객이 원하는 물성과 색을 더한 맞춤형 EP는 자동차 범퍼, 밥솥 커버는 물론 응원봉에도 숨어있었다.
플라스틱에 색과 물성을 더하다

전북 익산시 LG화학 공장 엔지니어링 소재사업부의 컬러 개발팀은 고(高)기능 플라스틱인 고객 맞춤형 EP를 다룬다. 이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기계적·열적 성질이 뛰어난데 기초 원료에 탈크(Talc)나 유리섬유(Glass Fiber) 등 부자재를 함께 넣어 만든다. 플라스틱이 자동차, 가전 등에서 단단한 갑옷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컬러 개발팀은 EP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색을 입힌다. 고객 요청을 바탕으로 컬러 처방을 하고 염료를 계량한다. 이 처방은 청진기처럼 생긴 기계를 이용하는데 노하우가 쌓이면 맨눈으로도 가능하다. 응원봉에 들어가는 불투명 흰색은 물론, TV 뒷면 같은 짙은 검은색까지 1년에 1,200개 넘는 색을 만든다. 이 계장은 "구름 색에 대한 요청도 있다"며 "고객의 감성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염료를 원료와 섞어 기계에 넣으면 EP가 가래떡처럼 얇고 기다랗게 뽑아져 나오는데(압출), 이를 필렛 형태로 작게 잘라 사출기에 넣으면 시편이 탄생한다. 이때 나온 색이 고객 마음에 들면 이를 양산해 EP 필렛을 판다. 그러면 해당 고객은 이를 이용해 최종 제품을 생산한다.

같은 염료를 써도 원료 색이나 제품 사용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고객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고친다. 그래서 이 공장에는 색 판정을 위한 인공 광원도 마련돼 있다. 이날은 황치즈색 원료 압출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실제 뽑아져 나온 색은 더 짙은 주황색에 가까웠다.
색으로 만든 경쟁력... 친환경 시장 진출에도 도움

LG화학이 색깔에 집중하는 것은 시장에서 대체 불가한 공급자가 되기 위함이다. 1987년 기술 개발을 시작했고 거느린 해외 생산 법인만 7개다. 이돈익 팀장은 "LG화학의 석유화학은 플라스틱 중심, 엔지니어링 소재 사업은 맞춤형 플라스틱 컴파운딩을 다루고 있어 모두 플라스틱을 중심에 뒀다"며 "(컬러 개발을 통해) 고객 맞춤형 컬러 제품을 제공한다면 경쟁사 제품으로 바꾸기 어려워져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영업 이익 규모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전략은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시장에서 LG화학만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재활용(PCR·Post-Consumer Recycled) 플라스틱 원료에 컬러를 구현하는 난도 높은 기술도 지니고 있어 친환경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LG화학은 하지훈 가구디자이너와 협업해 2023년 '리소반(RE:SOBAN)'을 내놨는데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와 협업해 '올해의 서울색'을 입힌 소반을 내놓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는) 플라스틱도 감성적이고 예쁘면 오래 쓸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며 "색을 입힘으로써 플라스틱을 지속가능한 소재로서 역할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산=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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