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위, 민간인 희생사건 368건 ‘무차별 보류’
목격진술에도 제적등본 기록 다르면 인정 안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오는 26일 조사기간 만료를 앞둔 가운데, 400건 가까운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이 ‘무차별 보류’ 끝에 조사중지로 결정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충분히 민간인 희생으로 진실규명(피해 확인)할 만한 여지가 있음에도 무더기로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26일로 예정된 박선영 위원장의 조사기간 만료 기자간담회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진실화해위지부(진실화해위지부)는 23일 보도자료를 내어 “자체 조사 결과, 과거사 사건 총 368건의 조사결과보고서 작성이 완료되어 상임위원에게 보고되었으나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보류되었다가 소위에서 심의 한번 못해본 채 조사중지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2기 진실화해위가 조사중지로 의결한 2116개 사건의 현황과 원인을 분석한 결과다.
진실화해위지부는 “이러한 ‘묻지마 보류’는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1국에서만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조사1국을 관할한 상임위원은 지난달 23일 2년 임기를 마치고 떠난 이옥남씨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인 황인수 조사1국장은 조사관들을 지휘하며 일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건 현장이나 주검 수습 등을 목격한 구체적인 진술이 확보됐는데도, 제적등본상 사망 일자가 다르거나 다른 기록과 차이가 난다는 형식적인 이유로 계속 보류되다가 끝내 진실규명 기회를 놓친 사례들이 다수 있었다. 1기의 경우 제적등본·족보 등 기록이 맞지 않아도 신청인이나 참고인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으면 진실규명이 됐는데, 2기에서는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론을 내리는 분위기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지났다는 특수성과 사망신고를 제대로 안 하던 당시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렇게 소위원회 상정도 못 하고 조사 중지된 사건의 96%는 군경 사건(353건)이었다. 이는 조사1국의 편향적인 사건 처리를 보여주는 통계로, 일부 위원 및 간부의 특정 사건(군경 사건)에 대한 편향적이고 과도한 입증 기준 요구도 주요 원인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 조사중지율은 13.4%로 지방좌익 등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2.1%)에 비해 6배가량 높고, 진실규명률은 59.8%로 적대사건(78.5%)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는 그간 지적되어 온 ‘사건 유형별로 상이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비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진실화해위지부는 설명했다.

또한 국가가 생산한 문서는 신뢰해야 한다는 무비판적 해석도 문제로 지적됐는데, 공문서에 반하는 진술과 정황, 전문가 자문을 확보해 놓고도 상정 자체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조사 중지된 사례도 있었다. 13살 등 미성년 희생자를 ‘암살대원’으로 기록해놓고 나이를 조작한 경찰기록에 근거해 진실규명 보류를 고집하다 결국 조사 중지된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진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옥남 전 상임위원은 “경찰 기록은 신뢰할 만한 공문서”라면서 맹신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국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국가 관리 부실로 애초에 없거나 소실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개시 된 367건 중 무려 85%에 해당하는 311건이 조사 중지됐다. 피해자·유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일부 위원 및 간부의 각종 지시도 조사를 지연하는 원인이었다.
진실화해위지부는 “향후 3기 진실화해위가 재출범하게 된다면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소위원회 안건 상정과 심의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합리적 근거 없이 진실규명을 지연시키거나 불능 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내·외부의 통제 장치를 마련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위원 임명 시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른 보은성 인사, 헌법과 과거사법(진실화해위 기본법)이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는 인사는 배제하고 과거사 전문가와 활동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를 포함해 이념논쟁이 아니라 과거사법이 지향하는 진실규명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위원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20일 열린 전공노 진실화해위지부 임시총회에서 김애자 지부장에 이어 지부장을 겸임하게 된 정혁 직장협의회 회장은 23일 한겨레에 “회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했더라면 최소 몇십 건은 더 처리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충청지역 미군 사건은 100차 위원회에서 3명에 대해서만 보완하기로 합의했던 사건인데, 108차에서 결국 시간에 쫓겨 48명 전부 일괄 조사 중지되었다. 담당 조사관 얼굴이 벌게져 허망해 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박선영 위원장은 조사기간 연장에 실패했고, 그 결과 잔여 사건 처리가 어렵게 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박 위원장은 피해자를 위해 조사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지만 끊임없는 에스앤에스(SNS)상 부적절한 발언과 국회에서의 5·18 관련 발언으로 국회가 조사기간 연장을 승인하기 어렵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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