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사고파는 SNS… 정치공론장 무너뜨린다[북리뷰]

2025. 5. 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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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렌스 콜
크리스 헤이즈 지음│박유현 옮김│사회평론
자극적 콘텐츠에 쏠린 ‘좋아요’
건전한 여론형성 어렵게 만들어
혐오·폭력으로 이성적사고 중단
디지털자본주의 시대의 ‘주의력’
미디어에 착취당하는 현실 지적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세이렌은 암초에 앉아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홀린다. 일단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 누구든 넋을 빼앗긴다. 대가는 죽음이다. 조금이라도 더 그 노래를 듣기 위해 암초 가득한 그녀 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귀향길에 나선 오디세우스는 세이렌과 만나기 전에 잔꾀를 낸다. 부하들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기 몸을 기둥에 묶어, 세이렌의 바다를 이겨낸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삶을 살아가려면, 지혜를 다하고 인내를 발휘해 욕망의 유혹을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사이렌스 콜’에서 미국 작가이자 MSNBC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크리스 헤이즈는 오늘날 우리가 세이렌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거대 자본이 중독을 유발하는 세이렌 장치들을 통해 우리 주의를 포획해 제 입맛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우리 관심을 뿌리까지 빼앗아 착취하는 건 ‘주머니 속의 작은 주의력 상자’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소셜미디어의 유혹이다. 이 책은 세이렌이 지배하는 주의 경제가 우리 일과 삶,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비판적으로 탐색한다.

이 책에서 헤이즈는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디지털 자본주의가 우리 주의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파헤친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가 노동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었듯,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주의를 추출해서 사고파는 상품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 핵심엔 ‘슬롯머신 모델’이 있다. 슬롯머신이 레버를 당기고, 맘 졸이다 어쩌다 보상을 받는 과정을 통해 도박 중독을 유발하듯, 소셜미디어도 무한 스크롤 피드에서 사회적 주의(‘좋아요’나 하트, 댓글이나 알림)를 얻는 과정을 반복시킴으로써 사용자를 중독시킨다. 이는 우리 보상 체계를 바꾸고 취향과 선호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킨다. 클릭을 유발하는 선정적·자극적 콘텐츠에 더 큰 보상을 주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의 착취 기술은 국민투표, 여론 형성 등 정치적·사회적 의사결정을 왜곡한다. 여론이란 본래 주의 체제, 즉 무엇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지, 그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공통 이해에 바탕을 둔다. 이는 사회적 이목을 끄는 의제를 제시하고, 청중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디지털 세이렌들은 대화와 합의에 바탕을 둔 민주적 주의 체제를 파괴한다.

타자와 함께 관심을 공유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고, 차례를 지켜 말할 이유도 없는데, 공통 관심사를 찾아 대화하는 수고를 왜 감당하겠는가. 자기가 듣고 싶은 것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되는 세계에선 관심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발휘한 추악한 천재성에서 보듯, 사회 전체 복리나 가치, 사실이나 진실과 상관없이 자극적 선동을 통해 지지층 관심만 끌면 충분한 것이다.

이로써 정치는 진실을 나누고 가치를 겨루는 설득과 토론이 아니라 유권자 주의를 끌려고 버둥대는 볼거리에 가까워진다. 혐오와 폭력 등 논란을 유발하는 트롤링, 음모론 같은 거짓말로라도 우리 관심을 빼앗아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키고 의미 있는 대화를 감소시킨다. 이성적 대화와 비판적 논쟁은 사라지고, 선동 구호와 묻지 마 지지가 이를 대신한다. 슬롯머신 모델은 그 원리상 이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디지털 자본주의 아래에서 관심은 이제 나만의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포착되어 측정되고, 가공되어 경매되며, 알고리즘을 통해 유도되어 판매되는 상품으로 변한다. 주의는 콘텐츠 소비로, 참여는 클릭으로 변질된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알고리즘을 거치면서 조각조각 나뉘어 싸구려 상품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나라는 자아는 산만하게 분해되어 공중으로 사라진다. 소셜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무상으로 건넨 후, 시시콜콜한 콘텐츠와 형편없는 스팸 광고를 대가로 받는다. 그 결과는 정치의 붕괴이고, 사회의 파편화이며, 자아의 죽음이다.

삶이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서 체화한 것들의 총합이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경험, 관계, 정체성이 달라진다. 따라서 집중력을 도둑맞고 주의를 빼앗기면,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세이렌 신화는 바깥의 목소리에 홀려 주의를 남에게 양도한 삶은 결국 난파해 죽음, 즉 공허와 무의미에 빠져듦을 알려준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주의를 마음껏 착취하는 사회는 영혼이 난파한 좀비 사회나 마찬가지다. 424쪽, 1만9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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