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으로 풀어낸 민주주의의 절망 그리고 희망 [기자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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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펜 끝은 날카로워야 한다던데, 한 사안을 깊이 취재할수록 말문이 막혔다.
망설임으로만 풀어낼 수 있는 삶과 세상의 진실이 책 한 권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책이, 바다이되 바다가 아니고, 육지이되 육지가 아닌 갯벌의 미학을 닮은 까닭은 민주주의가 역설로 가득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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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현 지음
창비 펴냄

기자의 펜 끝은 날카로워야 한다던데, 한 사안을 깊이 취재할수록 말문이 막혔다. 바다인 줄 알았던 곳은 육지였고, 육지구나 했던 곳은 돌아보니 바다였다. 연차와 함께 그 기억들이 쌓이며 갯벌에 파묻힌 사람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만 같았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오랫동안 입안에만 맴돌던 바로 그 말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우리는 한편에서 문제를 푼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342쪽).” 누군가는 무기력이라 할 서성거림의 윤리가 여기에 있었다. 망설임으로만 풀어낼 수 있는 삶과 세상의 진실이 책 한 권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책이, 바다이되 바다가 아니고, 육지이되 육지가 아닌 갯벌의 미학을 닮은 까닭은 민주주의가 역설로 가득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와 세종 같은 성군이 다스리는 왕조 중 20년간 살아갈 나라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길게 보면 핏줄 대신 능력에 따라 선출되는 민주정의 리더가 더 뛰어나다고 영리한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완벽한 방어는 되지 못한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문제해결을 약속하며 목청을 높이는 후보는 능력자이기 이전에 오만하고 기만적인 인물일 확률이 높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후보를 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 체제에 내재한 한계에 시민들은 지쳐간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위한 제도로 고안되었다.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며 각종 사회문제의 최종적인 해결과 책임을 정부에 요구하게 된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보면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역설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고루 보장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가 불완전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게 보일 수 있는 제도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럼에도 이 이상(理想)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제도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를 존엄한 존재로 다룰 수 있는 마음의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208쪽)”이다. 책에 인용된 19세기 사상가 토크빌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정치는 국민에게 가장 능란한 정부를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가장 유능한 정부라도 흔히 이루어놓을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226쪽).” 이 연약하고도 강인한 체제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노래여 날아가라’ 가사 중)”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철인왕과 작은 공(共), 관료제와 시민의 마음, 고대의 사상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두려움과 사랑, 절망과 희망. 같이 엮을 수 없을 것 같은 개념들이 탁월하고도 겸손하게 책 한 권에 녹아 있다. 바다이면서 육지인 것. 역시 갯벌이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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