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의 종로와 흑의의 혼마치…‘음악광 시대’ 모던 경성의 구별 짓기 [.txt]

“백의(白衣)의 가운데 흑의(黑衣)가 섞이고 인력거 무리 속에 전차, 자동차가 질주한다. 지방인은 경성으로, 외래인도 경성으로, 경성은 신구의 교합처요, 파괴와 건설의 교향지(交響地)다. 이 착란한 교향악 속에 몇 사람이 질식하며 그 몇 사람이 절도하는가.”(1929년 10월17일 동아일보 ‘대경성은 어대로 가나: 파괴와 건설의 교향악’)
조선의 ‘한성’이 대한제국 ‘황성’이 되고 식민지 ‘경성’으로 이름이 바뀌며 격변하던 시기를 ‘음악적’으로 포착한 이 기록은 ‘음악회’란 거울로 당대 ‘모던 경성’의 속성을 비춘 책에 포착·인용됐다. 백의의 조선인들이 ‘도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도시화에 휩쓸리고 있을 때 일본에서 건너온 흑의의 일본인들은 경성 땅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경성 인구의 25%에 근접(조선 전체로는 3%)하며 경성을 ‘내지’처럼 연출하고 싶은 열망으로 도시화의 속도를 올렸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음악회는 일제의 문화정치와 일본에 유학한 젊은 음악가들의 귀국과 맞물려 식민지 경성의 “최고 유행물”이 된다. 책은 음악회의 유행이 ‘작은 조선’이었던 종로와 ‘리틀 도쿄’로 불렸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에서 어떻게 다르게 펼쳐졌는지 보여준다.
식민 지배의 의도가 도시 ‘기획’에 반영되듯 음악회도 종로에선 “서구식 공연의 시작 단계”에 있었으나 일본인 밀집지 혼마치에선 “전문 음악인들이 참여하는 격 높은 공연들”을 선보였다. “그것이 그것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구성돼 음악회란 “미명을 빌려서 일시의 호기심으로 돈냥이나 모아서 목전의 소리(小利)를 보려는” 종로의 음악회가 1930년대가 되면서 줄어든 반면 혼마치에선 전문화된 음악회가 꾸준히 증가했다. “경성 안에서 반갑지 않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두 민족은 음악회라는 하나의 장치를 통해서 철저하게 분리되었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서로를 구분 짓고 밀어냈”다. 조선 근대화의 중심이자 식민 지배의 중심이란 성격이 충돌했던 ‘이중도시’ 경성에서 식민과 피식민, 중심과 주변, 고급과 저급 사이의 대립은 음악 사회 안에서도 또렷했다.
책은 저자의 박사 논문을 기반으로 했다. “음악광 시대”를 파고든 역사 탐색이 흥미롭고, 대중서로 충분히 옷을 바꿔 입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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