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 끝에 실낱같은 빛 [삶과 문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1632년 작 '명상하는 철학자'에는 어두운 방 한편 모아 쥔 손 쪽으로 상반신을 기울여 앉은 노인이 있다. 그의 왼편으로는 책상이 있고, 책상 위 창문으로 따뜻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이 너무 밝아보여서, 실제로 불을 밝혀놓은 것 같다. 렘브란트가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휘도계로 창가 가장 밝은 부분의 밝기를 측정해보면 생각보다 수치가 높지 않다. 하긴 유화 물감의 밝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왜 그리 밝게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창문 옆 벽이 가장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곁에 둔 어두움을 통해 밝음을 극대화시켰다. 그는 어쩌면 어둠의 화가라 불려야 할지 모른다.
명암 대비를 통해 물감이 지닌 물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화가의 전략은 보는 이의 시각시스템을 활용하는 면에서 최적이다. 우리는 눈에서 시작하여 뇌까지 여러 단계의 신호 처리를 통해 세상을 본다. 빛이 환경에 있는 물체의 표면에 닿아 반사되어 눈을 통해 들어오면 눈 뒤편 망막에 상을 맺는다. 처음 상을 맺을 때는 담당하는 위치의 절대적인 밝기를 각각의 시각 수용체들이 계산한다. 그러나 그 이후 내내, 시각시스템은 절대 밝기보다는 밝고 어두움의 상대적 차이, 즉 명암 대비에 반응한다. 렘브란트가 시각시스템의 구조와 원리를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어떻든 그는 보는 이의 눈과 뇌의 반응을 이끌어 낼 줄 알았던 것이다.
뇌는 왜 대비에 반응할까? 변함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는 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꺾이는 경로의 변화, 갑자기 시야로 날아 들어온 공, 빨갛게 잘 익은 과일 한 쪽에 검게 벌레 먹어 변한 부분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것이 생존과 건강을 위해 훨씬 유용하다. 따라서 한정된 시스템의 자원을 다른 것, 변하는 것, 차이가 생기는 것에 우선 할당하도록 발달해온 것이다.
단지 시각을 비롯한 감각 시스템만 그럴까. 변화, 차이, 대비에 대한 반응은 뇌 전체의 작동원리다. 환경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도 뇌의 중요한 과제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별 일 없이 사는 일상의 행복을 그토록 강조하는 건, 역설적으로 인간의 뇌가 그만큼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기에, 별다른 변화 없는 시간에서 행복을 찾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극적이었지만 계속 접하면 별 감흥이 없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도 같은 원리에 기반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혹여 깊은 어둠 속에 침잠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둠이 깊을수록 아주 작은 밝음도 더 밝게 보일 것이니까. 어둠을 경험한 후에야 밝음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까. 작열하는 태양보다, 어두운 터널 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는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이 더 눈부신 법이니까. 어두운 방에서 몸을 구부려 앉은 렘브란트의 철학자도 어쩌면 환한 창가의 빛을 받으며 이런 생각에 빠져 있지 않았을까.

김채연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뇌인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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