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계·물시계…우주 이치에 닿고자 한 인류욕망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5. 5. 2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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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시간- 레베카 스트러더스 지음/김희정 옮김/생각의힘/2만2000원

- 英 최초 시계학 박사이자 제작자
- 동물뼈로 만든 시간측정 장비 등
- 고대 이집트부터의 역사 들려줘
- 정교한 수리작업 과정 등도 담아

“다른 점검을 모두 마치고 나면 무브먼트를 다시 케이스에 넣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동력 전달 장치와 문자판을 제자리에 다시 끼우고 문자판을 단단히 고정하는 그러브 나사들을 조인다. 시곗바늘을 끼우고, 정시에 시침과 분침이 정확하게 겹치는지 확인한다. 무브먼트를 케이스 밴드에 넣고 스템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빼서 케이스의 구멍을 통해 끼워 단단히 고정한다. 무브먼트를 밴드에 고정하는 마지막 두 개의 나사를 조이고 뒷면을 덮는다.”

시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레베카 스트러더스의 책 ‘시계의 시간’에 실린 시계 그림. ⓒCraig Struthers,생각의힘 제공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길고 섬세한 일의 마지막 과정 일부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시계 수리 과정을 읽는 동안 책 속 시계의 작은 부품이 날아갈까 봐 숨을 죽였다.

고친 시계는 마지막 시험을 한다. “시계가 작동하는 동안 가능한 모든 위치와 각도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계의 ‘손목’에 시계를 채우고 사람이 착용하는 것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한다. 낮 동안에는 움직이게 하고, 밤에는 한 위치에 그대로 두는 것을 일주일간 계속하는 동안 시계는 계속 똑딱거리며 작동한다. 그런 시험을 거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최종 확인을 하고 나면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옆 페이지에 실린 ‘회중시계 무브먼트 분해도’를 보았다. 그림에 그려진 것만이 시계 부품의 전부가 아니다. 손목에 차는 시계는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작은 부품이 완성하는 기계일까. 그리고 어떤 시간을 거쳐 왔을까.

레베카 스트러더스의 ‘시계의 시간’은 기계식 시계의 세계와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 최초로, 시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시계제작자이다. 2012년 남편 크레이그 스트러더스와 함께 설립한 ‘스트러더스 워치메이커스’ 공방은 부품 제작부터 시작한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할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공방이다. 2021년에는 영국 전통 공예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 3세로부터 HCA(Heritage Crafts Association) 의장상을 받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시계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최초의 시간 측정 장치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물건은 남아공 레봄보 산맥의 ‘국경 동굴’에서 발견된 비비의 종아리뼈이다. 4만4000년 된 이 뼈에는 29개 홈과 30개 칸이 있다. 저자는 이 뼈다귀에서 “할머니의 할머니를 거슬러 올라간 할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날짜를 세어 나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외에도 고대 이집트 유적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해시계, 기원전 427년 플라톤이 발명한 물시계, 9세기 영국 웨식스 왕국 알프레드 대왕의 양초시계, 중국 천문학자 소송(蘇頌)의 혼천의와 천문 시계, 이슬람 문명의 우수함을 자랑한 알자자리(al-Jazari)의 ‘코끼리 시계’, 중세 유럽을 지나 시계 제작의 황금기… 등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원시적인 시계는 점차 발전해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기발한 장치’가 됐다.

이 책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기계식 시계는 독자적인 개성과 인격을 가진 장인의 손에서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몇 년의 세월도 감수하며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이 작은 세계에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던 인류의 오랜 욕망과 부·신분·지위를 돋보이고 싶었던 본능이 담겨 있다. 또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당대 최고 기술자가 되고자 한 시계 제작자들의 꿈과 열정이 함께 녹아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눈을 가리고도 기계가 만든 시계와 손으로 만든 시계를 구분할 수 있다. 진정한 지각을 지닌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제 시계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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