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책 읽는 게 힙하대요- 조문주(작가·텍스트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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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게 힙하대요. 그래서요." 스무 살 손님이 책방 문을 열며 말했다.
표지가 마음에 든다며 책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녀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문장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사놓고 안 읽은 책도 많은데, 자꾸 사고 싶어져요." SNS에서 스친 한 문장에 마음이 끌려 책방을 찾고, 예쁜 표지에 반해 책을 고르는 젊은이들.
누군가에게는 좋은 문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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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게 힙하대요. 그래서요.” 스무 살 손님이 책방 문을 열며 말했다. 표지가 마음에 든다며 책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녀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문장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종이책을 읽는 풍경이 낯설어진 시대지만, 책방에서는 이런 손님을 종종 만난다. “사놓고 안 읽은 책도 많은데, 자꾸 사고 싶어져요.” SNS에서 스친 한 문장에 마음이 끌려 책방을 찾고, 예쁜 표지에 반해 책을 고르는 젊은이들. 겉보기엔 조금 엉뚱하고, 허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전은 허세를 ‘실속 없이 겉을 꾸미는 태도’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 겉치레 같은 태도 안에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은 오래전 문학 속 인물들에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 개츠비는 허세의 대명사다. 화려한 저택, 밤마다 이어지는 파티, 세련된 말투. 그러나 그 모든 과시는 결국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되찾기 위한 몸짓이었다. 실속 없이 꾸민 ‘척’이 아니라, 끝내 닿고 싶은 간절함의 표현이었다.
‘척하는 삶’의 이면에 숨겨진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릿하게 다가온다. 돈키호테의 허세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터무니없는 이상과 정의를 외치며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허세는 결국 신념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불가능해 보여도 ‘이게 나의 길’이라 믿는 마음, 어차피 안 될 일이라 해도 기꺼이 해보겠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허세가 품은 가장 아름다운 용기 아닐까.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고 싶은 오래된 욕망과 닿아 있는 일이다. 허세는 그 욕망의 얇은 외피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문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그러니 책방을 찾는 젊은이들을 그저 허세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안에는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그것은 연습이고, 동경이며, 아직 닿지 못한 세계를 향해 내딛는 조심스러운 걸음이다.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를 갈망일지라도, 그 찰나야말로 빛나는 순간이 담겨 있다.
책방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조금 느리고 낯선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말을 아끼고, 감정을 웃음으로 덮고, 본심 대신 밈과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 책 한 권을 사서 가만히 펼쳐본다는 건 단순한 소비 이상의 태도다. 누군가는 좋은 문장 뒤에 조용히 숨고, 책을 핑계 삼아 마음을 건넨다. 닿지 못한 감정이 문장 한 줄, 책 한 권을 통해 가장 다정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좋아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마음에 남은 문장을 품고 돌아가는 그 작은 움직임에는 오래된 진심이 숨어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문학의 시작과도 닮아 있다. 아직 다 닿지 못한 마음, 미처 꺼내지 못한 말, 망설이는 손끝. 그 어설픔 속에서 오히려 단단한 문장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런 마음을 품은 이들을 반긴다. 좋아 보이는 문장을 붙잡고, 멋진 표지에 이끌려, 충동처럼 책장을 펼치는 그 모습이 대견하다. 어떤 문장은 마음보다 늦게 도착한다. 지금은 잘 몰라도, 언젠가는 그들도, 나도, 그 문장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까. 책 읽기는 힙하니까.
조문주(작가·텍스트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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