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영암선생길’ 명예도로 제정…지역 헌신, 길 위에 새기다

황영우 기자 2025. 5. 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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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대봉 회장 기증·투자 기려…도서관·시장 연결 200m 구간 명명
지역 상권 회복과 정체성 상징…주민들 “기억과 희망의 길 되길”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남부시장 맞은편에 설치된 영암선생길 명예도로 표지판. 황영우 기자

"과거 상대동 일대는 온통 갈대밭이었지요."

이 한마디에, 한 세대의 기억과 포항 남부지역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조용히 길을 닦은 이가 있다. 고(故) 황대봉 영암선생이다. 그의 이름이 이제 '길' 위에 남는다.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영암도서관 인근에 설치돼 있는 영암선생길 명예도로명 표지판. 황영우 기자

포항시가 지난 10일, 남부시장 건너편과 영암도서관 인근 상공로 56번길 200여 m 구간에 '영암선생길' 명예도로명을 제정하고 도로표지판을 설치했다.

이 도로에는 단순한 이름표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영암선생길이 침체된 지역 상권 회복과 도시의 정체성 회복에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명예도로명은 2024년 10월 한 시민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포항시는 협의와 주민 의견 수렴, 주소정보위원회 심의까지 절차를 거쳐 올해 4월 최종 공고하며 고인의 이름을 거리 위에 남겼다.

황대봉 선생은 대아그룹 명예회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포항 남부지역에 기증과 투자로 공공 인프라를 조성해 온 인물이다. 그가 설립을 이끈 영암도서관, 이름을 딴 영암경로당, 종합운동장, 병원, 남부시장 등은 지금도 지역 주민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한 세대가 지나도 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17세에 포항에 정착해 평생을 이 지역에 살아온 최모(60대) 씨는 "예전엔 비만 오면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니던 갈대밭이었는데, 지금은 도서관이 들어섰다"며 "영암선생님이 구획정리를 통해 이 일대를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대동은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영암도서관. 이 도서관은 고 황대봉 대아그룹 명예회장이 기증했으며 지난 1987년 4월 15일 개관했다. 황영우 기자
실제로 상대동 일대는 주택과 상권이 혼재된 구조 속에서 고령층 비율이 높다. 그 중심에 있는 영암도서관은 1984년 착공해 1987년 개관한 이래로,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의 배움터 역할을 해왔다.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영암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신문을 탐독하는 모습. 황영우 기자
최근 많은 도서관이 열람실을 없애고 프로그램 중심으로 전환되는 가운데서도, 영암도서관은 동해석곡도서관과 함께 포항에서 유일하게 열람실을 운영 중이다. 총 136석의 공간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자격증을 준비하는 직장인, 하루하루 학습의 기쁨을 누리는 어르신들의 보금자리다.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영암도서관은 노인 특성화 도서관인데 치매, 건강 등 각종 자료가 별도로 구비돼 있는 모습. 황영우 기자
22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영암도서관 내 디지털정보열람실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모습. 황영우 기자

18년 경력의 양제윤(51) 사서는 "어르신들은 모바일 기기보다 화면이 큰 PC를 선호하시고, 디지털 정보열람실에서 건강과 치매, 간병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며 "영암도서관은 지식의 공간이자 정서적 안식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명예도로명 설치가 도서관의 가치를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황대봉 회장님의 이름을 딴 이 길을 따라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대동의 또 다른 주민은 "젊은 사람들은 신도심으로 가고, 이곳은 주택이 많아 어르신들이 주로 살고 있다"며 "도서관 이용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주차 공간 확보 등 추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년 4월 기준, 상대동 인구는 2만 2,676명.

그중 수많은 이들이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목, 바로 그 '영암선생길'은 이제 기억의 장소이자,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헌신은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한 세대의 배움은 길 위에서 시작된다.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 '영암'이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