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영화 관람의 정치학

정영오 2025. 5. 22. 16: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늘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무슨 영화를 봤느냐 속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가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대통령들은 영화 관람을 ‘말 없는 정치연설’로 활용해왔다. 대선 후보 시절 “반미주의면 어떻습니까?”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변의 만류에도 2006년 반미주의 메시지가 담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관람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독 광부·간호사와 함께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영화 관람을 정치적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인만이 아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1965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흑인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였던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다룬 ‘셀마’를 관람했고, 재임 중 매년 ‘올해의 영화 목록’을 공개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2006년 독일 비밀경찰 슈타지를 소재로 한 ‘타인의 삶’을 관람하며, 동독 출신으로 겪었던 전체주의 공포를 경고하고 통일 독일의 자유주의 가치를 강조했다.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영화 애호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대선 기간 “매달 한 번씩 영화 연극 공연을 보겠다”고 약속했고, 취임 후 석 달에 한 번꼴로 영화관을 찾았다. ‘택시운전사’ ‘미씽: 사라진 여자’ ‘1987’ ‘천문’ 등이 대통령 시절 관람 목록이다. 문 전 대통령은 꼬박꼬박 감상평을 남겼는데, 2012년 첫 대선 후보 시절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후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얼굴이 저절로 떠올라”라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관람한 영화 기록은 취임 초기인 2022년 ‘브로커’뿐이다. 김건희 여사와 나란히 앉아 관람한 윤 전 대통령은 굳이 “칸에서 상(송강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라서가 아니고”라고 전제한 후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해, 언론의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탄핵 후 영화 관람은 반향이 컸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영화 관람 도중 졸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분명히 영화 홍보에는 긍정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