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LNG선 초호황도 끝물 온다...값싼 '중국 상선' 압도하라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2021~2024년 LNG 개발로 운반 수요↑
조선 3사, LNG 운반선 중심 '슈퍼사이클'
'사이클 하강기' 구조조정 경험 트라우마
LNG 수주 빠져도 '물량형 상선' 수주해야
중국 꽉 잡고 있는 상선 시장 돌파 필요
"한국 기술로 선사 맞춤형 상선 수주 가능"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야드에서 길이 밀리기 시작했다. 앞서 크고 작은 트럭들과 지게차들이 50m가 넘는 줄을 만들며 멈췄다. 높이 128m, 폭 165m, 자체 중량만 7,560톤(t)에 달하는 골리앗 크레인이 대형 철근을 옮기기 시작한 것. 골리앗 크레인이 움직이면 주변을 지나가던 차량은 안전을 위해 모두 멈추는 게 당연하지만 그 뒤로 만들어진 긴 줄로 울산조선소 독(Dock, 배를 건조하는 곳)이 얼마나 바삐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 울산조선소 9개 독은 2022, 2023년에 세계 각국 선사로부터 건조 계약을 따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비롯해 각종 컨테이너선, 에탄 운반선 등을 만드느라 가득 차 있었다.
슈퍼사이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업계의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이만한 단어가 없다. 조선 3사 모두 앞으로 3년 동안 독 일정이 모두 찼다. 그런데도 조선업계에서는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황 속에서 위기를 떠올리는 조선업계 아이러니의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 구조조정이 남긴 '교훈'
가장 큰 이유는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끝난다"는 경험이다. 조선업계 직전 슈퍼사이클은 2000년대 중반~2010년 초반이었다. LNG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수주가 급증했다. 하지만 2014~2016년 글로벌 해운경기 침체, 유가 하락, 중국 조선업 부상 등으로 수주 절벽이 오면서 수익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일감은 줄었는데 인력과 설비는 유지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
결국 조선업계의 선택은 구조조정이었다. HD현대중공업은 2015~2018년 전체 인력(사내 하청 포함)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3만3,000명을 감축했고, 삼성중공업은 2016~2018년 전체 인력의 30~40%인 약 5,400명을 줄이는 계획을 실행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지금의 한화오션)은 정부의 도움을 받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조선업계에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불황기를 대비하지 않고 무리하게 해양플랜트 사업을 확장하고 쪼그라드는 주문이라도 잡아보기 위해 가격을 낮춰 수주한 결과가 동료들을 잘라내는 것이었단 건 상당히 큰 상처로 남아 있다"며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끝난다는 교훈을 이때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클 하강기에 필요한 '물량형 상선' 수주
현재 조선업계 슈퍼사이클은 2021~2024년 미국, 러시아, 카타르 등에서 진행 중인 LNG 생산 프로젝트로 인한 수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발주 덕이 크다. 그런데 해당 프로젝트들이 정리가 되면 '사이클 하강기'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변용진 iM증권의 연구원은 "벌써 올해 1분기(1~3월)까지 발주량이 2021~2024년 평균 발주량보다 약 60% 적고글로벌 선가 가격이 지난해 10월 하락하기 시작했다"며 "2027년이 되면 실적에 가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이 같은 하강기에는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꾸준히 수주가 가능한 '물량형 상선'을 공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에 뒤지지 않기 위해선 높은 품질의 일반 상선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선 시장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는 88%, 유조선은 74%까지 올라왔다. 이 밖에 벌크선(80%), 자동차 운반선(83%) 등 거의 모든 상선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특히 벌크선은 저부가가치 선박이고 중국이 너무 싼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며 "한국 조선업계는 가격 측면에서 중국과의 상선 경쟁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조선 3사 '고급 상선 전략'..."선주 맞춤형 주문 대응"
이런 상황에서 조선업계가 선택한 건 '고급 상선 전략'이다. 중국보다 앞선 조선 기술로 '선주 맞춤형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글로벌 해운그룹 'AP몰러-머스크'가 화물 적재 효율성과 운항 가시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컨테이너선을 원했는데 HD현대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선실을 뱃머리로 배치하는 설계를 내놔 수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화오션이 대만의 글로벌 해운사 '에버그린'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여섯 척 계약을 동급 최고 수준인 한 척당 2억6,730만 달러로 계약을 따낸 것도 대표적인 예다. 에버그린이 비싼 값을 치르겠다고 나선 데는 LNG 이중연료추진 엔진, 축발전기모터시스템, 공기윤활시스템 등 한화오션의 친환경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삼성중공업이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선단을 탈바꿈하려는 그리스 해운사 차코스 에너지 내비게이션으로부터 13억 달러 규모의 셔틀 탱커 아홉 척을 수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규모의 경제로 품질보다 가격을 낮추는 데 몰두한다면 한국 조선업계는 기존의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까다로운 선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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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7>공급 과잉에 속타는 화학
울산=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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