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개방 화장실, '노조 조끼' 입으면 못 쓴다?
점심 식사 후 화장실 이용하려는 시민, 방송 출연차 KBS 찾은 노동조합 간부도 제지
언론노조 KBS본부 "이러고도 수신료 납부 바라나…헌법은 물론 사규에도 어긋나"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공영방송 KBS가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공공에 개방된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시민을 막아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KBS에 출연하러 온 노동조합 간부에게도 노조 조끼를 벗어야 경내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등 '노조 혐오'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광석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장(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 입점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KBS 시설보안을 담당하는 자회사(KBS 시큐리티) 직원에게 제지 당했다. 서 지부장은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했고, KBS 앞에선 집회나 시위 일정이 없었다.
서 지부장은 “시큐리티 직원 분이 '어떻게 왔냐'고 해서 밥먹고 화장실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번에 '조끼 입고 오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며 “왜 그러냐 했더니 '시위하는 데가 아니라 국가기밀시설'이라고 하더라.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노조 옷을 입고 뭉쳐 다니거나 시위하는 것도 아닌데 노조 조끼를 입었다고 그렇게 했다”고 전했다.

서 지부장은 현장 직원에게 어떤 규정이나 근거로 노조 조끼를 문제 삼는지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며, 화장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 경내 편의점으로 이동했을 때에는 팀장 직함의 직원들이 추가로 와서 자신들을 저지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은 뒤 KBS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면서, KBS 감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고 밝혔다.
KBS 경내에는 누구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 편의시설 등이 있다. 보안이 필요한 내부 공간으로 진입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을 허가 받아야 하지만, 개방된 공간에는 주변 직장인이나 연예인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 관광객 등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월에는 KBS 콘텐츠 촬영을 위해 사옥을 찾은 노동조합 간부가 '노조 조끼'를 입고 경내에 들어갈 수 없다는 보안 직원 저지에, 조끼를 벗고 출입하기도 했다. 해당 간부가 출연한 콘텐츠는 KBS가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로 진행한 유튜브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영상이다. 영상 속 김선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판매연대지회장은 노조 조끼를 입고 있지만, 촬영 전후로는 조끼를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도로와 인접한 KBS 신관 정문에서부터 복장을 이유로 제지 당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복장을 입은 이들에게 개방된 공간 사용을 '불허'한 KBS 조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사회적 논란을 부른 KBS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 당시, 이를 규탄하러 KBS 본관 앞을 찾았던 참사 유가족들도 본관 로비에 위치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해당 로비는 KBS 라디오 공개홀과 견학 공간, 스튜디오로 향하는 출입구 등이 있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찾아와 이용하는 공간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서희원 변호사는 21일 통화에서 “기본적인 시설관리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로비 등 일반 공중에게 공개된 장소라면 노조 조끼를 이유로 제지하는 것은 합리적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대상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공개된 장소가 아닌 법정에서도 노조 조끼 착용을 금지해선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판정 사례가 있다. 2022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이 노조 조끼를 입은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출입을 막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과잉제재 방지 관련 직무교육을 권고 받았다. 당시 인권위는 “집회 시위와 관련된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청사 출입을 차단한 것은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법원 존엄과 질서유지 및 청사 방호를 위해 청사 내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할 필요는 있으나 법원 방문 목적이 분명하고 청사 내 집회 시위 가능성이 없거나 낮아 청사를 출입하더라도 법원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KBS 내부에서도 “이러고도 국민에게 수신료 납부를 바랄 수 있는가”라며 “사측 행위는 헌법은 물론 사규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1일 성명을 내고 사측 대응은 행복추구권 및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며 헌법의 차별금지 원칙에 어긋나며 노동3권에 대한 혐오와 무시라 규정했다. 또한 보안업무처리규정에 따르면 본사에서의 감시는 '비밀 또는 공사재산이 침해될 수 있는 구체적 위험 예방 목적에 국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또한 “시큐리티 눈에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거나 세월호 노란잠바를 입거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폭도로라도 보인다는 것인가”라며 “폭도라면 오히려 2년 전 신관로비를 점령하며 수신료 분리징수를 촉구했던 극우 유튜버들이 해당할 것이다. 그런 인물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기 전까지허용됐던 공간”이라고 했다. 나아가 이들은 “시큐리티의 막무가내 행태가 가능했던 것은 김승욱 시큐리티 사장이 KBS 경영진의 노조 혐오에 맞춰서 자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이라 주장한 뒤, 김 사장 해임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KBS 사측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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