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터널 속에 갇힌 한국 전기차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수백만원씩 할인해 팔고 있다.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져 수출이 줄고 재고가 쌓이면서 결국 출혈대응을 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올 들어서만 생산라인 가동을 세 차례 중단했다. 차를 싸게 팔아도 살 사람이 없으니 만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최대 수출처이자 판매가 지속적으로 늘었던 미국은 그나마 시장이 열려 있었지만, 전망이 투명하진 않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이 조기 종료될 가능성까지 흘러나온다. 일본 혼다는 2030년까지 계획했던 전기차 투자 규모를 당초보다 3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커녕 더 악화하거나 지지부진한 국면이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미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주요 업체들이 원가 이하로 가격을 낮추며 점유율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여파는 글로벌 시장 전체로 번지고 있다. 한국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산 저가 전기차는 이미 국내 시장에 상륙했다. BYD의 소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아토3'는 지난달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가 됐다. 한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자동차 관련 공약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공약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000cc이하의 승용차와 전기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양당 유력 후보 모두 전기차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자국 기업과 발걸음을 맞추는 좀 더 영향력 있는 공약이 절실하다. 전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을 떠받칠 미래 먹거리다. 글로벌 경영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고 특히 관세 리스크로 완성차와 부품 업체들의 부담이 상당하다. 자동차업계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정부가 방치하면 안 된다. 중국의 전기차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외풍에 흔들리며 고군분투 중인 기업들의 손을 정부가 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성공과도 직결된다.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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