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난민’ 파고 벗어나다 ‘암초’ 만난 학회

이성주 2025. 5. 22. 08: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Voice of Academy 19-학회열전] 대한재활의학회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노인환자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를 움직이는 힘, 재활의학'.

대한재활의학회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2015년 학회가 △환자의 마음을 움직여 재활의지를 갖도록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며 △환자가 중심이 돼 더 나은 삶을 향해 움직이게끔 한다는 뜻을 담아 만들었다.

재활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슬로건에 한국현대사의 상처와 이를 극복해온 선인들의 노력이 녹아있다. 더불어 급속히 발전했지만 모순이 응축된 우리 의료시스템의 틀을 깨어나려는 재활의학 전문의들의 몸부림이 투영됐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재활의학은 6.25 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 위에서 싹 터 장애인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비틀거리며 성장했다. 재활의학회는 '의료의 목적은 완치'라는 편견 때문에 환자 치료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짐을 지고,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고령화시대가 진행되면서 학회의 역할은 커가고 있지만, 치료 환경의 개선은 더뎌 위기감 속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문병기 신정순 안용팔 오정희 교수, 학회 출범 이끌어

학회는 1972년 연세대 문병기, 신필수, 정인회, 신정순 교수 등과 가톨릭대 안용팔, 노약우 교수, 고려대 오정희 교수 등 회원 50명으로 닻을 올렸다.

6.25 전쟁으로 재활의학의 필요성이 부각된지 20년 만이었다. 거리엔 숱한 상이군인과 민간인 장애인이 비명을 질렀고 1952년 경남 거제도 세브란스병원에 물리치료실, 이듬해 절단자재활시설이 생겼다. 부산 동래에선 국립재활원이 설립됐다. 당시 기관의 설립과 장애인 치료엔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손길이 큰 역할을 했다.

1950년대 연세대 문병기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수련을 받으며 재활의학의 전 과정을 배워 국내에 소개했고, 신필수 교수는 국내 최초로 재활의학 강의를 시작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선 소아재활원, 절단자재활센터, 재활학교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며 장애인 치료와 재활 교육이 이루어졌다. 가톨릭대 안용팔 교수는 독일에서 '물리요법'을 배우고 귀국해 서울대 의대, 수도의대(현 고려대 의대), 가톨릭대 의대 등에서 물리치료 및 재활의학 관련 강의를 했다. 고려대 오정희 교수는 미국 뉴욕대에서 '재활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러스크 박사에게 수학하고,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연수받은 뒤, 1969년 고려대 의대(당시 우석대)에 부임, 1970년 국내 최초의 재활의학교실을 설립했다.

이들 선각자들은 학문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회를 만들었고, 1973년 5월 지금의 명동성당 앞에 있었던, 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에서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공식적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외과 등의 의사들이 학회를 이끌었다. 재활의학 전문의제가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 1982년 7월 재활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시행됐고 이듬해 1월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해 22명의 재활의학 전문의가 배출됐다.

학회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처음부터 국제화에 신경 써 1974년 국제재활의학회 및 총회에 회원기관으로 등록했고 1979년 4월 서울에서 범태평양 재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1989년 11월 서울에서 제6차 국제의지보조기학회 세계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2007년에는 세계재활의학회 학술대회를 열었다. 특히 연세의료원장, 건양대의료원장 등을 역임한 박창일 학회 이사장(2002~2004)은 2006년 제4대 세계재활의학회 회장으로 선임됐는데, 재활의학회가 국내 의학회 가운데 최초로 세계 의학회 수장을 배출한 것이다.

학회는 이처럼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학술지 《대학재활의학회지》를 영문학술지 《Annals of Rehabilitation Medicine》으로 전환해 세계 학술 조류와 발맞춰 가고 있지만, 학술 활동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활 난민' 바로잡으려 끊임없이 정관계 설득

학회는 재활치료가 절실한 중병 환자가 병원에 오래 입원할 수 없어 병원을 돌아다니며 '재활 난민'으로 지내야 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정관계를 설득했다.

학회 강석 총무이사(고려대 구로병원)는 "학회는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장애인 단체와 협력해 왔으며, 재활의료기기 분야 발전을 위해 관련 업체들과도 협력해 장애인 지원 기술의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재활의학회는 50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33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학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학회 임원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고령화시대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재활의학 수요가 크게 확대되고 있고, 중증 장애인의 꿈을 해결할 로봇공학, 소재공학 등의 발달에 발맞춰가야 하기에 연구할 게 급속히 쌓이고 있다. 재활의학 전문의들은 중증 장애인 환자들에게 치료와 함께 꿈을 심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암초가 생겼다. 지금도 중환자실 환자를 비롯한 중증 질환자에 대한 재활의료 수가 보상 체계가 부족해 의료진이 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기 힘든데, 이들 환자가 재활의료를 받기 더 어려운 방향으로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강석 이사는 "정부가 상급 종합병원의 기능을 고난도 필수의료 중심으로 재편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이들 병원에서 재활의료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증 또는 복합 장애인, 그리고 중증 장애로 진행이 우려되는 환자들이 적절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더 심화된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학회 임원들은 의정갈등으로 부족해진 일손 때문에 거의 매일 진료를 봐 녹초가 된 몸으로 일과 후 수시로 '비상회의'를 하고 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Copyright © 코메디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