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김에 세종으로? 다시 만난 관습헌법의 벽

김동인 기자 2025. 5. 2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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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의 집무실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용산과 청와대 외에 세종이 후보로 떠오른다. 후보마다 행정수도 완성을 공약하지만 속내는 조금씩 다르다.
차기 대통령의 집무실 후보 중 하나로 청와대가 언급되면서 최근 방문객이 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제20대 대선을 엿새 앞둔 2022년 3월3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이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조치원역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쥔 윤석열은 이렇게 외쳤다. “세종을 행정수도에서 ‘행정’자를 뺀 진짜 수도, 실질 수도로 만들겠다.” 청중은 환호했지만, 이 말에는 애초에 모순이 담겨 있다. ‘진짜 수도’와 ‘실질 수도’는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당시 윤석열의 발언은 ‘진짜 수도’보다 ‘실질 수도’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격주로 국무회의를 세종에서 개최하는 등 본인이 세종을 더 자주 찾아와 실질적인 행정수도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가 강했다. 개헌과 법 개정을 통한 수도 이전, 그러니까 ‘진짜 수도’라는 의미까지 확장하는 약속은 아니었다. 저 발언을 남긴 지 17일 뒤, 대통령 당선자가 된 윤석열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며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3년 뒤, 윤석열은 12·3 쿠데타와 뒤이은 탄핵을 통해 잠잠했던 ‘진짜 수도’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윤석열의 ‘용산 시대’는 12·3 쿠데타와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군사 공간에 집무실을 마련한 윤석열이 군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만큼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정치권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권자들의 관심 중 하나도 ‘과연 새 대통령은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이다. 용산은 윤석열 시대의 아집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문재인 정부까지 사용하던 청와대는 대중에게 너무 노출된 상태다. 자연스럽게 이 국면에서 등장한 이름이 바로 세종이다. 이전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각 당 경선 과정에서 대다수 후보가 중장기적으로 세종에 새로운 집무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평상시라면 정치적 중심지를 세종으로 옮기자는 주장에 쉬이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수도 이전 시도는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을 위헌 판결하면서 한 차례 동력이 꺾인 바 있다. 다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또 다르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만큼이나 수도 이전에 명분이 되는 정치적 동력이 하나 더 있다. 서울 과밀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현 수도 서울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원과 인구가 한데 몰리면서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저출산과 소득·자산 양극화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된다는 인식을 부정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명분과 타이밍, 두 요소가 결합하는 상황에서 각 당 대선주자들도 대통령 집무실 세종 이전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경선 중이던 4월17일 “세종을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만들겠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내 건립하겠다”라고 밝혔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5월1일 세종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자신이 지휘하는 공무원과 같이 있어야 한다. 지역이 균형발전할 수 있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을 통해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적어도 세종시의 수도 기능 강화 또는 수도 이전의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대선주자는 현재로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산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각 후보의 온도차도 존재한다. 방향성은 일치하더라도 최종 목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완성’으로 볼 것인지, ‘수도 이전’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장기적으로 예상되는 정치적 경로가 다르다.

차일피일 미뤄진 대통령 세종 집무실

행정수도 완성에 방점을 찍으면 현재 추진되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성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2021년 국회법 개정,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칙’ 마련 등을 통해 분원(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명문화했다. 2025년 5월8일 현재 분원 설계와 해당 부지 터 닦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통령 세종 집무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처음 추진되었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공약화됐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지다 일반연구비 3억원(2023년)과 설계비 10억원(2024년) 예산만 편성된 채 구체화하진 못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공약은 주로 국회와 대통령실의 ‘분원 공간’을 제대로 확보하고 완성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개헌을 할 필요도, 법을 고쳐 다시 헌법재판소의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분원은 분원일 뿐’이라는 점이다. 국회 세종의사당의 경우 각 상임위가 세종으로 옮길 예정이지만, 대통령실의 경우 현재 이전이 논의되고 있는 세종 집무실(제2집무실)은 국회 이전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대통령실은 단일한 공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숙소인 관저, 대통령의 집무실, 경호 공간, 과거 여민관으로 대표되는 비서진 사무 공간, 그리고 언론이 활용하는 공간(과거 춘추관)까지 많게는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오가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다(〈시사IN〉 제481호 ‘청와대 출신들, “관저 집무실이 뭔가요?”’ 기사 참조). 제2집무실만 마련한다고 한국 정치의 심장부가 세종으로 이동했다고 보긴 어렵다. 현재 추진 중인 분원 완성에 그칠 경우, 생색내기 수준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 건물 너머 공터가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다. ⓒ세종특별자치시 제공

전면 재검토와 재설계, 그리고 본격적인 이전을 위해서는 결국 ‘관습헌법의 벽’을 넘어야 한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수도 이전에 제동을 걸면서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인 것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헌법적 관습이며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라고 결정했다. 우리 헌법 구조가 성문법 체계를 갖고 있지만, 명시되지 않은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도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는 주장이다.

결국 당시 헌재 판결에 따를 경우, 수도 이전은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018년 개헌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도 당시 개헌안 제3조 2항에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을 신설하려 했으나 끝내 불발됐다. 관습헌법의 벽을 넘지 못한 세종시는 결국 ‘신행정수도’ 대신 ‘행정복합도시(행복도시)’로 축소됐고, 행정부 수반과 외교·통일·국방·법률 기능이 부재한 미완의 공간으로 남아야 했다.

20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수도 이전 논의가 정치권에서 등장하고 있지만, 절차와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쿠데타 이후 ‘개헌 빅텐트’를 대선 전략으로 가동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옛 여권은 ‘개헌 만능론’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4월10일에 국민의힘 개헌특위가 발표한 개헌 방향에 따르면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을 앞세우며 내란 종식보다 개헌을 통한 새판 짜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4월8일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장한 조기 개헌론에 제동을 걸었고, 4월23일 당내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도 “(개헌이)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것도 아니고 개정 헌법이 즉시 시행되는 것도 아닌 만큼 여유를 둬도 되겠다”라고 언급하며 개헌을 급히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도 완전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4월17일 “국회 본원과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겠다”라며 ‘조건부 공약’을 내세운 상황이다. 이재명 캠프의 한 관계자는 “세종으로 가기로 결정하더라도 새 집무실 건축 등에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나온 행정수도 관련 내용은 경선 과정에서 언급된 정도다. 보다 구체적인 집무 공간 관련 공약이 곧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0대 대선 경선 당시 세종시청 1층에 위치한 국회 세종의사당 모형 앞에서 균형발전 공약을 발표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연합뉴스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사회적 합의’는 두 갈래로 예상해볼 수 있다. 서두르지는 않지만,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국회 임기 내(~2028년)에 개헌을 추진해 관습헌법의 벽을 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헌법재판소가 이제는 다른 판단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신행정수도법을 재추진하는 것이다. 실제로 5월1일 조국혁신당이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황운하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충청권 의원들이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색하는 세종의 속사정

특별법을 통한 수도 이전 재추진은 개헌과 별개로 추진되기 때문에 보다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헌재에서 한 차례 위헌판결이 난 법안을 재추진하는 부담감이 있고, 만약 새로 추진한 특별법이 재차 위헌판결에 직면할 위험도 상존한다. 한편으로 헌재가 20여 년 전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2004년 헌재 판결 당시 ‘관습헌법’에 대한 논란이 뒤따랐고, 당시에 비해 사회 분위기 역시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강해졌다는 점도 작동한다. 실제로 정계선 헌법재판관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특위 질의 과정에서 “행정수도 위헌에 대한 재판단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5월1일 세종시청을 방문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윤석열이 불러온 ‘수도 이전’ 기회에 세종시는 반색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세종시는 도시 기능의 한계 때문에 확장이 정체되어 있었다. 2019년 행정안전부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당초 예정된 정부 부처 이동이 마무리되었는데, 이 무렵부터 세종시의 인구가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2년 11만3000여 명이던 세종시 인구는 2019년 34만명까지 급성장했지만 이후 5년간 늘어난 인구는 약 5만명에 불과하다. 2024년 11월부터는 39만명대에서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세종시 내 상가 공실 문제도 불거진다. 4월24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세종시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25.2%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세종시에서는 2023년 빈 상가에 모텔과 같은 소규모 숙박시설(일반숙박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추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종시는 관내 숙박시설이 모자란다며 일반숙박시설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반숙박시설이 난립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주민들도 상당하다.

세종시의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23년 공무원 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에 근무하는 전체 공무원 수는 2만3419명으로, 2023년 세종시 인구 38만6000여 명의 10%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지난 20년간 세종시로 전입한 인구 가운데에는 대전·충청 지역에서 전입한 경우가 많았다(〈시사IN〉 제632호 ‘‘혁신’ 품은 도시 빈집도 잔뜩 품었다’ 기사 참조). 대통령실과 국회의 이전이 불러올 수도권 인구 흡수 효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세종시는 수도 이전을 통한 추가적인 확장 가능성에 기대하는 중이다. 세종시의 이러한 기대감을 단순히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세종시의 기능 확대를 일각에서는 충청 광역권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로 보기 때문이다.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에서 시작된 지방 광역화는 일종의 ‘광역화된 생활권 구축’을 목표로 한다. 각 지자체마다 메가시티 구축을 통해 광역시의 ‘인구댐’ 기능을 유지하려 하는데, 충청권에서는 대전과 세종, 충북 청주가 연결되는 광역화를 인구 유출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세종시가 충청권 인구를 흡수한 것은 사실이나, 대전-세종-청주를 잇는 광역 교통망을 정비하면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일하고 교류하는 지역 생활’이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부산-울산-양산-김해-창원을 연결하는 부울경 메가시티와 큰 틀에서 유사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세종이 행정수반과 입법부까지 품은 ‘진짜 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대선주자들도 무시하기 어렵다.

4월25일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부지로 알려진 세종시 세종동 일대에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이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치적으로 수도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지는 관건이다. 이미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수도 이전은 각 유권자의 일상과 자산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 된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자는 주장에 동의하는 수도권 유권자도 있지만, 부동산 자산 가치 변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당장 차기 대통령이 어디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론이 분분하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4월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47%가 ‘청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답했다.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응답은 23%,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응답은 21% 수준이었다(95% 신뢰수준, 최대허용 표집오차 ±1.8%포인트). 특히 수도권 지역 응답자 가운데 세종 이전에 찬성한 비율은 서울 20%, 인천·경기 22%에 그쳐 이들의 여론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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