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재탄생] 작은 씨앗이 만든 기적…농업·문화가 함께 자라는 복합 공간

박자원 기자 2025.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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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재탄생] 전남 곡성 농업회사법인 ㈜미실란
발아현미 연구·생산 위해 2005년 설립
‘삼광벼’ 특수 저온건조…발아율 95%
식당·책방·갤러리·교육관 등 시설 갖춰
모내기 체험·북토크 등 프로그램 운영
“지속가능한 발전 이루는 모델되고파”
미실란을 설립한 과학자 이동현 대표(오른쪽)와 부인 남근숙씨. 곡성=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며 생명을 품듯, 버려졌던 공간이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 새 숨을 얻었다. 농업회사법인 ㈜미실란 이야기다. 전남 곡성의 한 폐교를 개조해 문을 연 발아현미연구소는 카페·책방·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동현 대표(56)는 우리 풍토에 맞고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발아현미 연구·생산을 목표로 2005년 미실란을 설립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美實蘭)’이란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 1998년 학생수 감소로 폐교된 전남 곡성읍 곡성동초등학교가 발아현미 품종을 개발하고 생산·판매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그는 학교 터에서 발아현미에 가장 적합한 품종인 ‘삼광벼’를 찾아냈고, 특수 저온건조 발아법을 적용해 발아율을 95%까지 높인 고품질 발아현미를 선보였다.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 내부.
다양한 발아현미를 혼합한 발아오색미.

이 대표는 일본 규슈대학교에서 미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에서 관련 사업을 하던 과학자다. 그런 그가 미생물이 아닌 발아현미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위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와 아토피를 앓던 둘째 아들 때문이었다. 천연 항산화물질인 감마오리자놀 등이 풍부한 발아현미가 가족의 건강을 되찾아줄 최고의 식품이라고 확신했다.

넓은 연구실이 필요했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그의 강의를 들은 곡성군수가 폐교와 논을 빌려주겠다며 곡성으로 와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유휴시설이 많은 폐교는 연구실로 쓰기에 최적의 장소였고, 그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때 이 대표는 일본 유학 중 방문했던 사가현의 한 농촌 폐교를 떠올렸다. 일본에서 시골 폐교는 농촌 소멸의 위기에서도 주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지역명소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일본에선 일찍부터 폐교를 다양한 전시와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농가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며 사람들이 다시 찾는 장소로 변모시키는 사업이 이어졌다”며 “누군가 이익을 독식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나누며 농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언젠가 나도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전남 곡성유치원 어린이들이 모내기 체험을 하는 모습. 미실란은 시민사회단체와 손잡고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농업 교육을 진행한다. 미실란

그는 처음에는 폐교를 곡성교육지원청으로부터 임차해 쓰다가 2년 뒤 완전 매입했다. 회사를 법인화한 뒤엔 황폐해진 학교 곳곳에 새 숨을 불어넣어 지금의 문화 공간을 완성했다.

미실란은 발아현미연구실·사무실·책방·식당·갤러리 등을 갖춘 본관과 발아현미 생산 라인이 있는 공장, 세미나·영화상영·북토크 등이 이뤄지는 교육관으로 구성돼 있다. 1만3200㎡(4000평) 규모의 폐교가 오롯이 발아현미 스타트업으로 바뀌었다.

농가 맛집 ‘밥 카페 반하다’에서는 그의 아내 남근숙씨가 발아현미와 지역농산물로 건강한 밥상을 차려낸다.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2년 전부터 북토크나 강의를 들으러 온 단체 손님만 받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한정된 일손으로 장과 김치 등을 직접 담그고 모든 식재료를 준비하기에 상시 운영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올해 4월, 식당은 ‘씨앗의 마음’이란 새 간판을 내걸고 새롭게 지은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농가 맛집 ‘밥 카페 반하다’는 4월 ‘씨앗의 마음’이란 새 간판을 내걸고 새로 지은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본관 2층의 옛 도서관 공간에는 김탁환 작가의 작업실 ‘달문의 마음’이 자리한다. 김 작가는 2018년 미실란과 인연을 맺은 뒤 이 대표와 함께 폐교를 공동체 문화 공간으로 일구고 있다. 본관 1층 복도 갤러리에는 유명 작가부터 신진 작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다.

미실란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곡성유치원에서 온 꼬마 손님들이 이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모내기 체험을 할 때다. 미실란은 시민사회단체와 손잡고 곡성교육희망연대를 창립해 13년간 농촌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농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본관의 옛 교무실 자리에 문을 연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은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세상과 소통하는 독서 공간이다.

올해로 스무살 청년이 된 미실란의 목표는 농업과 문화의 작은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미실란이 추구하는 생태 농업과 문화가 함께 성장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모델이 되고 싶다”며 “여기서 싹튼 ‘미실란스러운’ 농업 문화가 널리 전파돼 다양한 방식으로 열매 맺기를 바란다”고 했다.

곡성=박자원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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