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장은진 소설 '세주의 인사'

황재하 2025.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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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신작…이별한 남녀의 재회 다룬 중편
'세주의 인사' 표지 이미지 [작가정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동하 씨, 냉장고를 부탁해. 화분도. - 세주'

스물여덟 살 직장인 동하는 하루 일을 마치고 도착한 집에서 낯선 물건과 쪽지를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침실에는 빨간색 냉장고와 화분이 놓여 있고, 냉장고에 붙은 종이에는 세주가 남긴 메시지가 있다.

세주는 동하와 여섯 달 정도 교제하다가 헤어진 지 1년이 지난 옛 여자친구다. 세주는 머물던 집과 운영하던 식물 가게를 모두 처분하고 자기 물건들을 나눠 동하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뒤 종적을 감췄다.

동하는 세주의 메시지와 물건들이 어떤 뜻인지 의아해하면서 냉장고의 문을 연다. 술이나 음료가 들어 있을 줄 알았던 냉장고에는 뜻밖에도 평소 세주가 즐겨 읽었던 책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최근 출간된 장은진(49)의 중편소설 '세주의 인사'(작가정신)는 동하가 옛 연인인 동갑내기 세주의 물건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동하는 세주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의 끝을 찾아 여행을 떠났을 것이라 짐작하는데, 그 짐작대로 여행을 떠났던 세주는 반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동하가 자리를 비운 동하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된다.

동하와 세주는 과거 6개월 동안 연인 사이였음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런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의 부재 때문에 상대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그것에 궁금증을 품는다.

교제하는 동안 동하는 왜 세주가 줄을 오래 서야 하는 식당만 고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주는 동하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고, 동하가 왜 집안 이곳저곳에 알람 시계를 놓고 시간에 집착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헤어진 뒤에야 동하는 세주가 보낸 책들을 읽으면서, 책갈피에 끼워져 있던 세주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궁금증을 키워간다. 세주 역시 동하가 없는 동하의 집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동하의 성격이나 습관들에 대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하와 세주는 빨간 냉장고가 등장한 첫 장면으로부터 1년 반 넘는 시간이 지나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회하고,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대답한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품고 있었던 아픔을 서로 나누게 된다.

'세주의 인사'는 이처럼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차근차근 서로를 이해할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쉽고 담백한 문체로 그렸다.

세주가 동하에게 남긴 식물인 문샤인 산세비에리아(산세베리아)의 꽃말이 '관용'이라는 점, 동하가 정성껏 돌본 끝에 좀처럼 피지 않는 이 식물의 꽃을 피워낸 것을 계기로 세주와 해후하는 점은 관계와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관용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제목의 '인사'는 서로 헤어질 때나 만날 때 모두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헤어짐이 재회와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장은진은 세상의 중심에서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생기 있으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애틋한 문체로 표현해 호평받는 작가다. 그는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09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2019년 '외진 곳'으로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136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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