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자, 돌아오지 못한 자…이스라엘에도 짙은 상흔

김희진 기자 2025. 5. 2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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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592일…‘하마스 기습 최대 피해’ 키부츠 가보니
하마스의 공격으로 불탄 이스라엘 남부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의 한 집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의 우편함엔 먼지만 가득했다. 우편함별 이름표 옆에는 ‘살해’ ‘납치’ ‘석방’이 적힌 빨강, 검정, 파랑 스티커들만 붙어 있었다.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기습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곧바로 가자지구를 보복 공습하며 전쟁이 발발한 지 592일째, 니르 오즈의 시간은 전쟁이 시작된 그날에 멈춰 있다.

주민 올라 메츠거는 “230여채 집 중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건 7~8채뿐”이라며 “그날 이후 주민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 여기 사는 건 몇명 안 된다”고 말했다. 니르 오즈는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주민 51명이 숨지고 76명이 납치됐다. 14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메츠거도 그날 비극을 피하지는 못했다. 남편, 자녀들과 12시간 가까이 세이프룸(은신처)에 숨어 하마스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시아버지 요람과 시어머니 타미 메츠거가 인질로 잡혀갔다. 그해 11월 휴전 당시 석방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하마스에 억류돼 있던 중 사망했다.

니르 오즈 곳곳엔 검게 그은 집, 총알 자국이 새겨진 벽, 사라진 창문 등이 눈에 띄었다. 하마스가 공격한 흔적들이다.

태어난 지 9개월 된 크피르, 네 살짜리 아리엘을 포함한 비바스 가족은 아빠 야르덴 비바스를 제외하고 지난 2월 숨진 채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크피르는 하마스가 잡아간 최연소 인질로 이스라엘에 슬픔을 안겼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사이로 ‘펑’ 하는 포성이 쉴 새 없이 들렸다. 니르 오즈로부터 약 2㎞ 거리 국경 너머 가자지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 재점령을 위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을 개시하고 공습을 강화하는 중이다. 가자지구에선 592일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300여명이 숨지는 등 아수라장이 된 노바음악축제 현장은 추모의 장으로 변했다. 인근에는 당시 불탄 차량 1650대가 마치 장벽처럼 쌓였다.

정부 당국자, 언론인, 이스라엘군 관계자 등 기자가 만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10월7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1순위 목표가 생존을 위한 위협 제거로 변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두 국가 해법’도 멀어졌다. 이스라엘 외교부 지역안보·대테러부서 전략 담당인 엘리 리프시츠는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는 급격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통제·억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만난 무슬림 바사는 “이스라엘 정부는 10월7일 사건만 얘기할 뿐 그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팔레스타인 서점을 운영하는 마흐마드 무나는 “지난 2년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극우 성향 인사를 포함한 우파 정권이었다”며 “그들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를 기록한 팔레스타인 시민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분류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말했다.

텔아비브 | 글·사진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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