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만 ‘지금’입니까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13일, ‘공화당 텃밭’인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시장 선거에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 오마하 역사상 첫 흑인 시장이 탄생했을 뿐 아니라 현직 시장을 대상으로 민주당의 존 유잉 주니어 후보가 득표율 56%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처음엔 민주당이 불리했다. 공화당의 진 스토더트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와 유사한 선거 전략을 구사했다. 트랜스젠더 혐오를 활용해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며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는 유잉 후보가 부모의 동의 없이 청소년에게 성전환을 허용하고, 남성이 여성 화장실과 여성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도록 만든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유잉은 이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지역의 게이 바에서 열린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하며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진은 변기에 집중하는 반면, 저는 움푹 팬 도로를 수리하는 일에 집중합니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실질적인 정책을 강조했다. 혐오에 대응하는 선거 전략이 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18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있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가장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광장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요청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중요한 정책인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법 제정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촉구였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차별금지법으로 ‘갈등과 논쟁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은 2007년이었다. 당시 차별금지법은 정부 발의 법안이었다. 행정부의 수장은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법안을 단독으로도 처리할 수 있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상태였다.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와 비교하면 그 세력은 미약했다. 혐오를 조장하는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는 일도 없었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유튜브 방송도 존재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2008년에 열릴 총선을 의식하고 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룬 탓에 최적기를 놓쳤다.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단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이들도 계속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넣으며 법 제정을 반대할 수밖에. 그러니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이재명 후보의 바람대로 갈등과 논쟁을 넘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려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서 이제는 다른 이슈로 넘어가야 한다. 사회적 합의로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적어도 ‘차별을 허용하지는 않는 나라’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음을 온 세상에 천명해야 한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내란을 주도했지만, 그들이 만들려 했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사회를 구축할 때 비로소 내란이 종식될 것이다. 권영국 후보의 지적대로 ‘지금은 이재명'이란 현수막이 온 거리에 걸려있다. 궁금하다. 왜 당신만 ‘지금’인가. 왜 국민 모두를 위한 ‘지금’일 수는 없는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김문수, 미래를 열겠다는 이준석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애초 민주당이 제안했던 차별금지법으로 열 수 있다. 지금이다.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최적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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