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함성이 소음인가?

초등학교 운동회가 마을잔치인 적이 있었다. 부모는 물론 친·인척까지 모두 총출동해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박을 터트리고 공을 굴렸다. 청군, 백군으로 나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운동회는 집안의 큰 행사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요즘 초등학교 어린이 운동회 근황'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면 세태 변화가 느껴진다.
영상에서 운동장에 모인 100여명의 아이들은 운동회를 하기 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감사합니다." 라고 외친다. 뛰고 달리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운동회를 위해 주민에게 양해를 부탁하는 장면이다.
운동회에 참여한 아이의 부모인 영상 게시자는 "보호자들 참관도 없이 자기들끼리 노래 한곡 틀지 않고 마이크 볼륨도 높이지 않은 채 오전 9시부터 딱 2시간40분 정도했다"며 "이 영상의 소리가 다 함께 외친 처음이자 마지막 소리라 제일 컸을 텐데 운동회 한 번 마음껏 못하는 현실에 대부분 공감했을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파트 밀집 지역의 학교들은 운동회나 체육대회를 열려면 주민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아이들 함성이나 응원 소리로 인한 민원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들은 행사 전 '학생들이 좋은 추억을 쌓는 시간이니 하루만 참고 넘어가 주세요' ,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친 소음이 발생 시 교무실로 연락주시면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불편사항이 있으실 경우 언제든지 학교 교무실, 행정실로 연락을 주시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습니다' 등 협조문이나 안내문을 통해 주민에게 양해를 구한다.
운동회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하고, 최대한 조용히 응원을 해야 한다.
아이들 함성조차 소음이 됐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아이들의 함성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계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명예교수는 지난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지속하면 한국이 지구 위에서 사라지는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공개한 '지방소멸 2024: 광역 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기준 2002년 4곳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하던 소멸위험 지역은 지난해 3월 기준 130곳으로 57.0%에 이르렀다.
더구나 20~30대 여성인구가 65세 이상 인구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소멸 고위험 지역도 57곳으로 전체 시군구의 25%를 차지했다.
충청권 지역의 소멸위험 비율을 보면 충북은 11개 시군 중 8곳(81.8%), 충남은 15곳 중 12곳(80.0%), 대전은 5곳 중 2곳(40.0%)이 소멸위험지역으로 확인됐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집도 주고 일자리도 제공한다.
6·3 대선에 나선 후보들 역시 출산장려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현재 만 8세에서 만 18세까지 단계적 확대, 우리아이자립펀드 단계적 도입,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결혼하면 3년, 첫 아이 3년, 둘째 아이 3년, 총 9년간 주거비를 지원하는 주택(3·3·3 청년주택)을 매년 10만호씩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세 자녀 가구 차량 1대에 핑크색 '다자녀 등록번호판' 부여를 선언했다.
대선일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거리에는 아이들 함성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유세차량이 돌아다닌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소리가 소음이 아니면 무엇을까?
아이들 함성조차 허용하지 않는 세상에서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저출산 공약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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