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C 2025] 日 건축 거장 반 시게루 “권력자 부자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이재민을 위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예술가로서 ‘건축가’라는 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의 건축 거장 반 시게루(68)가 솔직한 고백으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건축가의 딜레마: 예술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회를 맡은 이경택 김수근문화재단 이사는 그를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사람에 의한 건축을 하는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권력과 돈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과 돈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들은 우리를 고용해 기념비를 만들게끔 합니다. 제가 기념비적인 건축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 지식과 경험을 소수의 특권층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해서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날 강연은 반 시게루의 건축 여정을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건축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그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그가 재난 구호 건축의 선구자로 거듭난 건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학살을 피해 수용소로 대피한 난민을 위해 종이 기둥을 이용한 보호소를 지으면서다.

“당시 2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생겼습니다. 유엔이 제공한 천막 구조물로는 우기를 버틸 수 없었어요. 유엔에 이를 개선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어요. 무작정 제네바로 향해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제가 고용되었고, 난민을 위한 구조물을 만들게 됐습니다.”
당시 유엔난민기구(UNHCR)는 주민들에게 알루미늄 기둥과 플라스틱판을 지급해 임시 주거 시설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알루미늄은 고가 소재였다. 굶주린 주민들은 이를 시장에 내다 팔고, 대신 나무를 잘라 기둥으로 썼다. 이에 반 시게루는 알루미늄 기둥 대신 재활용 종이 기둥을 떠올렸다. 현지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해 내놓은 묘수였다.
이후 반 시게루는 재해 현장이나 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한 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찾았다. 1995년 일본 고베, 1999년 튀르키예, 2010년 아이티, 2011년 후쿠시마 등 재난 현장 곳곳을 누볐다. 해체·조립·이동이 쉬운 종이를 거리낌 없이 자재로 썼고, 현지 사정에 맞는 새로운 공법의 건축을 선보였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데도 이런 활약상이 크게 작용했다.

디자인에도 세심한 심혈을 기울였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만든 종이 주택은 맥주를 운반하는 플라스틱 상자로 기초를 쌓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에는 기린과 아사히가 있습니다. 아사히 맥주 상자는 빨간색이어서 종이 주택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린에서 (노란색) 상자를 기부받았습니다.” 물론 디자인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필리핀 세부 현장에서는 산 미겔 맥주회사에서 상자를 기부받고자 했는데 이들이 경영난으로 거부해서 빨간색 코카콜라 상자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2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5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생겼다. 폴란드 헤움의 옛 테스코 마트 건물 등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머물 수 있는 피란 공간을 만들었다. 종이 기둥에 직물 커튼을 매달아 넓은 공간을 분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프라이버시는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그는 강연 중 “임시 구조물이란 무엇일까? 영구 구조물이란 무엇일까?” 청중에게 물었다. “서울, 도쿄 등 대도시를 보면 상업 건물은 콘크리트로 지어지지요.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새로운 개발업자가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 짓지요. 콘크리트도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임시 건축물일 뿐이지요.”
☞반 시게루
목재와 재생지를 활용한 친환경 건축으로 세계적 위상을 가진 일본 건축가. 2014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프랑스 퐁피두 메츠 센터(2010),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종이 대성당(2013), 대만 타이난 미술관(2019), 도요타시 미술관(2024) 등이 주요 작품. 현재 일본 시바우라공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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