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나에게로···‘릴로&스티치’와 떠나는 여행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책 제목에서 유래한, 지구를 의미하는 ‘창백한 푸른 점.’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난 뒤인 1990년 카메라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촬영한 사진에서 지구는 그야말로 티끌 같은 존재였다. 이 사진의 위대함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는 좋은 영화 혹은 예술작품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머나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다 돌연 스스로를 돌아본 보이저 1호처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현실에 거울을 들이대는 영화는 훌륭한 예술작품이 된다. 2002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다 23년 만에 ‘실사 영화’로 돌아온 <릴로 & 스티치>는 그런 점에서 좋은 영화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영화는 우주에서 시작한다. 불법 유전자 실험으로 탄생한 외계 생명체 ‘626’은 폐기될 위기에 몰렸다 탈출하는데 그렇게 불시착한 곳이 지구, 그 중에서도 미국의 하와이에 떨어진다. 유기견 센터로 흘러 들어간 626은 다리 한 쌍과 더듬이를 숨기고 강아지인 척하며 한 가정에 입양된다. 주인은 부모를 잃은 자매 나니와 릴로. 이들은 주변을 하도 할퀴어 늘 꿰매줘야 한다는 뜻에서 626에게 ‘스티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스티치를 잡으러 파견된 외계인 둘, 여기에 외계인 활동을 감시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까지 쫓고 쫓기는 관계가 하와이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와 가족 같은 관계가 되는 동안 벌어지는 우여곡절’로 치부해버리면 그저그런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던 관객은 어느새 스스로와 자신의 가족을 돌이켜 보게 된다. 세상에 둘만 남겨진 자매 나니와 릴로, 그들을 보면 단순하지만 섬뜩한 질문들이 던져진다. ‘내가 사라지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나’ ‘우리 가족이 사라지고 나만 남으면 어떻게 하나.’
올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터뜨린 것도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조실부모한 애순이 고생을 거듭하며 겪는 스토리지만 보는 이들은 자신과 ‘울 엄마’의 이야기에 대입하게 된다. 영화에는 ‘가족 사랑이 최고’ ‘이웃도 가족처럼’과 같은 식의 신파조가 없진 않다. 현실에선 가족이 지옥같은 사람도 있을 테고, 혈연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도 있을 텐데 이 모든 것들을 반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괜찮은 영화라는 평을 들어도 될 법하다.
다소 생뚱맞지만 같은 하와이를 배경으로 중년 남성(조지 클루니)의 정신적 붕괴를 다룬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디센던트>(2011)가 떠오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릴로 & 스티치>가 2002년작이니 더 오래됐지만, 실사영화는 <디센던트>의 ‘패밀리 버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법하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실사 영화’라고 하니 2002년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제 배우가 출연해 연기하고 이걸 찍은 영화라는 의미일 텐데, 정작 주인공 스티치는 컴퓨터그래픽(CG)가 대부분인 가공의 창작물이다. 앞선 디즈니의 실사 영화 중 <라이온 킹>(2019)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에서도 실제 살아있는 사자와 동물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닌데도 ‘실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영화라는 미디어 자체가 허상인데 실제와 허상을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걸 다 만들어주는 AI시대에 실물이 있느냐 없느냐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21일 개봉. 108분. 전체 관람가.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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