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대신에 사람 [똑똑! 한국사회]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해가 뉘엿뉘엿한 겨울 오후 김 할머니 댁. “계세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저쪽 골목에서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헐레벌떡 나왔다. “어디 가 계셨어요?” “너무 추워서 옆집 비닐하우스에 갔어. 그 안에서 임가랑 유가랑 있었어. 겨울엔 비닐하우스가 따듯해 좋아!” (거기 모여서 뭐 하셨어요?) “그냥 앉아서 얘기했지, 뭐.” (고스톱은 안 치셨어요?) “고스톱 치려니 사람이 있나. 사람 서닌데. 광 팔 사람이 없어서 못 쳐!”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봤다. 한겨울의 한기를 막아준 것은 얇은 비닐이 아니었다. 가까이 놓인 의자 세개의 온기였다.
돌이켜보면 공간을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다. 마을회관이니 쉼터니 하면서 돈을 지원받아 건물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건물은 돈만 있으면 단기간에 만들어지지만 관계는 쌓아나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들여도 잘 안될 수 있고 그 양을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 행정은 돈을 쏟아부어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 중요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은 동네에 그럴듯한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걸 보고 ‘이 동네 참 살기 좋겠네!’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 살고 있는 사람도 과연 그럴까.
방문진료 가서 만난 다른 마을의 정 할머니는 컨테이너에 살았다. 실내 온도가 영하 2도였는데 그런 곳에서 겨울을 지내왔다. 손끝에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려 해도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방 안이 너무 추워 손가락 끝 혈관이 오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으로 컨테이너 바로 앞에 새로 지은 마을회관이 있었다. 난방도 뜨듯하게 잘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겨울을 나지 못한다. 마을 이장님께 전화해 최강 한파 시기만이라도 며칠 지낼 수 있도록 부탁했지만 어렵다며 난감해했다. 얼마 후, 마을회관에 지원받은 안마의자의 분배 문제로 마을 사람들이 서로 등을 졌다는 소식도 들렸다. 가족이든 모임이든 마을이든 어떤 공동체를 파괴하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했다. 그곳에 돈을 던져주면 된다. 과연 정 할머니에게 그 동네는 좋은 동네일까.
반면 똑같이 홀몸 노인인 김 할머니의 집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추운 날에는 할머니들끼리 그곳에 모여 수다를 떤다. 할머니가 아프면 옆집 노인들이 죽도 쒀 온다. 잘 지은 마을회관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동네 중에서 나는 어디에 살아야 할까.
선거철이다. 두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는 앞다투어 ‘성장’을 강조한다. 그건 마치 한국이라는 마을에 더 좋은 마을회관을 짓자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작 그 마을 청년들은 (가난한 다른 마을 사람도 낳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다. 더 많이 벌지만 서로를 돌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성장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북극성이었다. 우리 대부분이 그 별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 결과 우리는 슬픈 부자가 되었다. 지상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라는 뜻이다.
김 할머니는 매일 다섯알의 수면제를 먹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잠들 때면 무서워 잠을 못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달에 서너번, 할머니가 약 먹지 않고도 잠을 자는 날이 있다. 멀리 사는 자식이 집에 와 자고 가는 날이다. 할머니에게 수면제는 사람 대신인 셈이다. 한국이라는 성장 사회에서 할머니는 수면제를 계속 복용할 것이고 그 약을 만드는 제약 회사는 끝없이 돈을 벌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돌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였다면 아마도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와주는 이들 덕분에 약 먹지 않고도 단잠을 잤을 것이다. 혼자 사는 시골 노인들 대부분이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대화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장난감 헝겊 인형처럼 생긴) 로봇이다. 성장이란 북극성은, 낙오되고 버려지고 고립된 이들로 가득 찬 죽음의 별이다. 성장 사회가 돌봄 사회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노년의 우리는 어떻게 잠을 청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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