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목살과 삼겹살 풍요의 이면

이영창 2025. 5. 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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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가서 네팔 어린이 분뇨시설 추락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 노출
축사 옆 가건물 숙소 쓰는 현실 언제까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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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 진열된 돼지고기. 뉴시스

15일 경북 의성군 양돈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네팔 국적 노동자의 26개월 딸이 1m 깊이 분뇨처리시설에 빠져, 의식이 희미한 상태로 구조됐다. 딸을 발견한 아빠가 119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했고,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는 상태란 보도가 나왔다. 아이는 한국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러 엄마와 함께 네팔에서 왔다. 그리고 아빠 숙소인 돈사 옆 컨테이너에서 함께 기거했다. 사고 당시 농장엔 네팔 가족만 있었는데, 경찰은 아이가 분뇨시설 위에서 놀다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엄마는 그때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타깝다가, 잠시 안도하다가, 결국 씁쓸한 여운을 지우지 못하는 기사다. 300자 단신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실존하는 현상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 돼지 목살과 삼겹살이 가득차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단서다. ‘사람이 먼저’라는 당연한 명제가 얼마나 멀리 존재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네팔’이란 국적에 집중해 보자. 양돈업은 외국인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축산환경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 양돈농가 노동자 1만5,385명 중 7,122명(46.3%)이 외국인이다. 돼지 농가의 외국인 의존율은 한·육우(5.7%), 닭(28.7%), 오리(17.3%) 농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중 네팔은 양돈 노동자가 가장 많이 오는 나라다. 2016년 ‘네팔어 양돈장 매뉴얼’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네팔인이 돼지 농가에서 일한다. 한국인이 저렴하고 질 좋은 국산 돼지고기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실상은 네팔 노동자가 높지 않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준 덕분이다.

다음 키워드 ‘경북 의성’엔 농촌 현실이 보인다. 경북(2,050명)은 충남(5,572명)과 경기(3,186명)에 이어 축산업 종사 외국인이 세 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네팔 아빠가 의성에서 일한 것도, 이 곳이 전국에서 가장 소멸 위험 높은 자치단체란 사실과 무관치 않다. 경북 북부 오지에서, 그것도 냄새를 참기 어려운 돈사에 숙식하며 일하려는 젊은 한국인을 구할 수 있을까?

네팔 가족 숙소였던 ‘컨테이너’는 잔인한 열쇳말이다.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장고인 쇳덩이를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쓰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비전문취업(농·축산·어업 등) 외국인 노동자의 20.2%가 여전히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기타 거처’에 산다. 정부가 2021년부터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곳엔 외국인 고용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네팔 어린이 목숨을 위협한 ‘분뇨처리시설’은 어른 생명도 종종 앗아가는 장소다. 2022년 충남 청양군 돈사 분뇨처리시설에서 작업하던 네팔인이 질식사했고, 2023년 전북 고창군 양돈장 정화조에서 중국인이 사망했다. 네팔인 부모도 이렇게 위험한 곳에 아이를 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 상봉을 한 그들에게, 관광지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을 것이란 점도 짐작할 수 있다.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엔 이런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다. 육류 소비를 줄이자거나 채식이 온당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1인당 연간 30㎏ 돈육을 소비하는 한국인의 ‘돼지 사랑’을 생각하면, 한돈 생산비를 낮게 유지하고 양돈농가의 적정 수익을 보장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빠를 만나러 이역만리를 날아온 두 살배기가 분뇨 더미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환경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작업공간과 주거지를 분리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 분뇨시설 옆 가건물에 사람 보금자리를 둔 비정한 처우는 그만해야 할 때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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