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인상주의 문을 연 마네의 `올랭피아`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회화는 종교화와 역사화, 권력자들의 초상화가 주류였다. 그후 19세기 중반 "눈으로 본 것만 그린다"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이끈 사실주의가 탄생했다. 이처럼 신앙이나 역사적 교훈, 또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그쳤던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게 바로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년)다. '올랭피아'(Olympia)는 마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그림이 당대의 화단에 미친 영향은 막강했다.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지만 1865년 살롱전 출품 당시엔 "썩었다"는 막말까지 들었다. 왜 그랬을까? 미술에 대한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었기 때문이다.
'올랭피아'는 누드의 여성 모델이 침대에 누워 있고, 곁에는 흑인 하녀가 꽃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앵그르의 '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도 구도가 비슷하다.
당시 올랭피아는 매춘부가 주로 사용하던 이름이다. 비너스가 아닌 매춘부를 그린 그림인 것이다. 여성의 목에 건 검정색 초커 목걸이와 리본끈, 슬리퍼 등은 고급 창부들 사이에 유행했던 장신구다. 흑인 하녀 곁 검은 고양이의 치켜진 꼬리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검은 고양이는 프랑스어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하녀가 든 꽃다발은 스폰서가 선물한 것이다. 더구나 매춘부 '올랭피아'의 눈은 정면을 응시한다. 남성 관객들을 향해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비평가들은우아함과 품위가 사라진 저급한 음란물이라며 "노란 배를 가진 오달리스크"라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마네는 그해 살롱전의 스캔들 메이커가 됐다.
'올랭피아'가 유명해진 것은 그림의 대상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의 절대 법칙인 원근법을 폐기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전통적 회화 기법 또한 거부했다. '올랭피아'는 완전 평면인 그림이다. 거리감이 표현돼 있지 않다. "그림이 그려지는 곳은 평면이다"는 마네의 혁명적 발상은 이후 인상·표현·야수·입체·추상 주의 등 모든 모더니즘 회화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졌다.
또한 마네는 색채와 붓질을 최소로 사용했다. 캔버스 전체에 바탕색을 칠한 후 그 위에 물감을 하나씩 덧대어 칠한 고전 기법 대신 바탕색 없이 즉흥적으로 색을 칠했다. '단번에' 라는 뜻을 가진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이다. 덧칠을 하지 않아 거친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미완성처럼 보였지만 작품의 생동성은 더 커졌다.
이는 일본 근대의 판화 '우키요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단순함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냈다. 원급법 대신 빛의 강약으로 표현한 그의 새로운 화법은 인상주의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인상주의 전시회엔 단 한차례 참여하지 않았지만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것이다.
'올랭피아'는 마네에 큰 영향을 줬던 시인 보들레르의 '여자 거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보들레르는 '올랭피아'의 그림처럼 "자연이 힘찬 정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여자 거인 곁에 살고 싶었네 여왕 발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이라고 노래했다.
당대 비평가들의 혹평과는 달리 20세기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은 "우리의 모든 르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작가 에밀 졸라도 마네의 작품에 대해 "새로운 예술이 태어났다. 모든 예술가는 마네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썼다.
모네는 대체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던 당대 화가들과는 달리 땅 부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시장, 아버지는 판사였으며, 어머니는 외교관의 딸이었다.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6년동안 정통 고전 미술을 배웠으며, 20세때는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을 여행하면서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모사하며 배웠다. 또한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전통을 고수하는 살롱전 신봉자이기도 했다. 1667년 '짐이 곧 국가'라는 루이 14세때 시작된 살롱전은 역사화 신화화 종교화가 주력이었다. 마네는 이런 살롱전 출품을 평생 고수했으며, 1874년 자신을 따르던 모네,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이 주최한 '제1회 인상주의전'에 출품도 거부했다. 이런 그가 전통을 파괴하고 모더니즘이라는 미래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미술평론가 조원재씨에 따르면 마네의 '변신'에는 두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는 보들레르다. 보들레르는 시 '악의 꽃'에서 악하고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보들레르는 또한 미술 비평가이기도 했다. 1863년 '현대 생활의 화가'라는 평론에서 "각 시대는 자신만의 자세와 시선, 몸짓을 지닌다"며 "옛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하는 건 불필요한 훈련"이라고 했다. "현대의 생활,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려라"라는 보들레르의 가르침은 마네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겼다. 마네는 보들레르를 깊이 존경하며 평생 사상적 스승으로 여겼다.
둘째는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다. '속세에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우키요에가 프랑스에 처음 알려진 건 1855년 파리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만국박람회'를 통해서다. 당시 일본이 보낸 도자기를 싸고 있던 종이 그림이 우키요에였다. 이를 발견한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이 이를 마네에 소개했으며, 마네는 충격에 빠졌다. 일본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담은 우키요에는 역사화 종교화만이 절대 진리라고 여긴 유럽의 화단을 비웃었다. 우키요에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절대적이고 신적 이상을 추구한 서양의 고전적 화풍과도 거리가 멀었다. 인물 건물 산 등이 모두 윤곽선이 뚜렷하고 원색으로 그려졌다.
마네는 이런 깨달음을 '올랭피아'보다 2년 앞서 1863년 내놓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 투영했다. 살롱전에 출품해 낙선한 이 작품은 나폴레옹 3세가 연 낙선전에 전시됐다. 그림 뒤편엔 여인이 몸을 씻고 있고, 왼쪽 아래에는 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온 과일과 빵, 술병이 뒹굴고 있다. 가운데 위치한 여인은 완벽한 몸매를 가진 여신이 아닌 배가 나온 나체로 정면을 응시한다. 방탕한 부르주아 신사들이 매춘부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가장 뒤에 있는 여성은 근처의 작은 배보다 크게 그려졌다. 원근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에서 영감을 얻고, 라파엘로의 원작을 동판화로 모사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팔리스의 심판' 일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세 인물의 구도는 '파리스의 심판'을 그대로 차용했다. 관람객들은 신화 성서 역사속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데 경악했다.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범인이라니! 정말 지저분한 누드다", "도대체 무신 이야기가 담긴 거야?"라는 악평이 쏟아졌다. 그림 속의 두 남자는 마네의 동생 귀스타브와 처남이 될 페르디낭 렌호프, 배가 나온 누드 여성은 빅토린 뫼랑이라는 그의 뮤즈가 모델이었다.
마네는 1876년 44세때 성병인 임질에 걸려 결국 51세때 사망한다. 세상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폴리베르제르 바'다. 당시 파리의 10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인기 술집이자 카페, 카바레, 서커스 공연장인 폴리베르제르의 풍경을 그림이다. 렌던 서머셋 하우스내 위치한 코톨드 갤러리라는 소규모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다. 폴리베르제르 바는 찰리 채플린이나 에디트 피아프가 공연한 곳이기도 하다.
거울 앞에 선 여인을 그린 것으로, 여성의 뒷모습은 배경으로 비쳐진다. 거울속 왼쪽 상단에는 공중 곡예사의 발이 보이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여인을 정면에서 보고 그렸는데 뒷모습은 거울 우측에 있다는 것이다. '두개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안에 넣은 것이다. '단 하나의 시점'이라는 회화의 고정관념을 파괴한 것이다. 이후 세잔은 유명한 사과 그림에서 '두 개 이상의 시점'을 당당히 집어넣었으며, 피카소는 여러 시점을 하나의 그림에 적용해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다. 미술 평론가 이은화씨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와 도전이 그를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낳았다"고 고 했으며, 조원재 씨는 "미래로 가는 문을 찾아 그림에 숨겨둔 화가였다"고 평가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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