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프라 잘 갖춘 ‘건강 도시’가 액시세대를 기다린다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 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의료 인프라 잘 갖춘 ‘건강 도시’가 액시세대를 기다린다
“원주는 감사가 다스리던 곳인데, 서쪽으로 250리 거리에 한양이 있다. 동쪽은 고개와 산기슭으로 이어졌고, (중략) 두메에 가깝기 때문에 난리가 나도 숨어 피하기 쉽고, 서울과 가까워 세상이 평안하면 벼슬길에 나아가기가 쉽기 때문에 한양의 사대부들이 이곳에 살기를 즐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1751년 쓴 인문 지리서 ‘택리지’에서 원주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주는 270년 전에도 서울에서 소문난 최고의 귀촌 희망지였다. 그런 명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는 원주가 강원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라는 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인구 소멸을 저지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과 달리 원주는 10년 넘게 인구가 연평균 3,000명가량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34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인구 증가세는 원주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 조성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원주시는 2005년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유치 계획을 발표했으며, 2017년 국립공원공단 이전을 끝으로 총 13개 공공기관의 원주 이전이 완료되었다. 완료 5년 후인 2022년 혁신도시가 위치한 반곡관설동에는 원주 전체 인구의 약 12%인 4만4,000명이 거주하며 사실상 원주 인구 성장 추세를 지탱하고 있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조성이 원주에 끼친 또 다른 장점은 비수도권 지역의 고민인 빠른 고령화로 인한 각종 문제도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장년층 공공기관 및 기업 직원들 유입과 정착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원주시 주민 중 65세 이상 고령 비율은 17.6%로 전국 평균 18.4%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원주가 새로운 터전을 찾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원주에서 만난 액시세대 주민은 “원주에는 액시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이 인구 대비 넉넉하다”고 말한다.
원주시도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온화한 기후, 깨끗한 자연환경, 잘 갖춰진 교통망 등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Healthy 원주’라는 표어를 내걸고 액시세대 유치에 적극적이다. 우선 혁신도시에는 건강·생명 분야의 공공기관 4곳이 이전하여 의료산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또 강원도 최대 규모의 상급종합병원인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국내 유일 의료마이스터 고등학교가 위치해 의료 특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공의료도 잘 운영된다. 평생건강운동의학센터를 통해 건강 위험군 선별검사 및 개인 맞춤형 운동 처방을 제공하고 있어 해마다 7,000명이 넘게 의학적 검사를 받고 1,000명 정도가 지속적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는다.
원주가 외지 액시세대의 마음을 끌 또 하나의 장점은 주민들의 개방적 태도다. 수도권·충청권·경상권을 잇는 교통 요지인 덕분에 오래전부터 외지인 비율이 높은 것이 원인이다. 지금도 외지에서 원주로 주민 유입이 활발하다. 단적으로 외지인의 아파트 매매 비중이 원주는 44%로 전국 평균 29%보다 크게 높다.
액시세대 위한 생활인프라, 건강 유지 서비스 양호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개발한 ‘액티브 시니어 지표’를 통해 원주가 액시세대의 정주 여건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액티브 시니어 지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액시세대를 위한 복지제도, 정책 요소를 측정하는 ‘서비스’와 시설 및 생활 기반 요소를 보여주는 ‘인프라’ 영역으로 나눠지며, 구체적으로 ‘문화·여가’ ‘의료’ ‘주거·모빌리티’ ‘녹지환경’의 4가지 분야에 대해 각각 두 가지 요소를 측정해 총 8가지 지표로 나눠진다.

액시세대를 위한 원주의 인프라는 전반적으로 전국 평균보다 우수하다. 특히 문화·여가, 의료(건강관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제도와 정책을 평가하는 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문화 프로그램 운영, 정보화 교육, 일자리 교육 등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안정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다만 문화 활동에 대한 재정 지원이 다소 미흡해 생활문화동아리 지원 확대와 예술교육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눈에 띄는 우수 사례로 원주에 본부를 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하는 ‘건강백세 운동교실’이 있다. 라인댄스, 에어로빅, 인지 훈련 프로그램 등을 지역 경로당 및 공공시설과 연계해 운영하며, 2024년 전국 만족도 조사에서 원주가 전국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기반시설과 골프장, 테니스장, 축구장, 파크골프 등 체육시설은 인구당 비율에서 전국 평균을 상회한다. 특히 노인여가복지시설 수는 74.43개로 전국 평균(54.4개)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실제 활용 가능성과 체감 만족도는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 서비스의 경우 구강·안과 치료, 의료비 지원, 건강검진·보험 지원 체계는 갖추고 있으나, 예방접종 및 간병 지원은 아직 체계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다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주도로 원주 내 44개 경로당에 화상으로 제공하는 운동 프로그램인 ‘스마트 경로당’ 서비스 등이 고령층 건강관리를 넘어 치매 예방을 돕고 있어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녹지환경 서비스 지수 역시 높은 평가 결과가 나왔다. 체육공원, 수변공원, 문화공원, 주제공원, 근린공원, 소공원 등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이번 원주의 사례는 지역 인구 감소가 보편적인 상황에서 좋은 정주 조건이 마련된다면 인구 증가도 가능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생을 통한 지역 인구 증가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인프라와 서비스, 그리고 주민들의 개방적 태도가 잘 어우러지면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수도권과의 접근성은 비슷하더라도 인구가 줄고 있는 여러 지역들에 원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자료 정리: 신준(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전공 석사과정) 민선아(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전공 석사과정)
액티브 시니어란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50~75세로 경력과 경제력 및 왕성한 소비력을 갖춘 세대’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정의하면서 ‘어제의 노인과 다른 오늘의 노인’이라고 범주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액티브 시니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대체로 1964~74년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을 ‘2차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 붐 세대’와 비교하면 고도성장기에 성장한 덕에 고학력과 노후 준비가 잘된 이들의 비중이 높다. 액티브 시니어의 표준화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어, 기획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로 쓰되 ‘액시세대’로 줄여 부른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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