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을 지지하지 못한 민주노총 [현장에서]

민주노총이 6·3 대선방침을 끝내 결정하지 못했다.
21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지난 20일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어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인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를 결정한다”는 제안과 “진보정당 및 진보정당과 연대 연합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제안을 포함한 대선방침 안건을 두고 밤늦게까지 고성이 섞인 토론을 진행했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표결로 대선방침 안건을 의결할지를 표결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후보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결론은 굉장히 낯설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올해로 30년을 맞는 민주노총은 ‘산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론’을 줄곧 유지해왔다. 1996년 12월 김영삼 정부가 정리해고·파견근로 도입을 포함한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 시켰고, 민주노총은 유례없는 정치총파업을 벌여 개정된 노동법을 폐기시켰다. 그러나 날치기 통과된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동법 ‘재제정안’이 이른바 ‘보수 양당’의 합의로 이듬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옛) 민주노동당을 탄생시켰다.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를 한 민주노동당이 여러 진보정당으로 쪼개진 뒤에도 진보정당을 지지해왔다. 가장 최근의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2023년 대의원대회에서 채택됐다. 이를 보면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포함해 진보 정치세력들의 결집한 힘을 만들어 노동자 집권과 사회변혁을 목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한편 특별 결의를 통해 “보수 양당체제를 타파하고 진보정치세력이 위력적인 대안 정치세력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의 관점에서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택지 자체에 없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지도부는 12·3 내란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지지 쪽으로 돌아섰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중집에서 ‘진보정당 및 진보정당과 연대 연합한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대선방침을 제안한데 이어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지난 9일 출마를 포기하자, 유일하게 남은 진보정당 후보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지지도 사실상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20일 열린 중집 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하면, 양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이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중집위원들은 “이번 대선은 내란으로 인해 치러지는 조기 대선으로, 핵심적인 목표는 내란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한다. 결국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직접적으로 ‘이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발언은 없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 산별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은 줄곧 진보정당을 지지해왔고, 2023년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집행해야 하는 중집이 이에 상반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며 “진보정당 후보가 버젓이 있는데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이들이 드는 근거는 단순히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당위만이 아니다. ‘과연 민주당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정서도 깔려있다. 민주노총 내부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이른바 ‘광장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지난 20일 민주노총 중집 회의장에는 “광장 시민의 1번 요구인 차별금지법조차 거부한 민주당 후보 지지 반대”라는 팻말도 놓여 있었다. 다른 산별노조 관계자는 “이 후보가 국민 통합이라는 이유로 보수인사들을 영입하고 있는데, 이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더라도 이후 출범한 정부에서 민주노총 요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내란 사태 이후 광장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자평했지만, 이후 열린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는 ‘빈칸’이 됐다. 양당정치의 폐해는 줄곧 지적돼왔고, 노동자의 요구와 이해를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결정이 아쉬운 이유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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