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무명의 끝, '언슬전' 구도원으로 피어난 이름 정준원 [인터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5. 5. 2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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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정준원 / 사진=에일리언컴퍼니

데뷔 10년 만의 스포트라이트다. 화면 안에서 계속 보고 싶은 얼굴이 됐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인기리에 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4년 차 구도원을 연기한 배우 정준원의 이야기다.

정준원은 극 중 교수들 사이에선 '구반장', 후배들에겐 '구신'으로 불리는 인물을 연기했다. 극이 진전될수록 병원의 공기처럼 익숙해진 그의 등장은, 배우 정준원의 이름이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품을 찍고 공개되기까지 좀 걸렸잖아요. 오랜만에 TV로 보는데 되게 이상했어요. 내가 안 나온 장면들도 시청자처럼 몰입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론 풋풋하고 예뻤고, 또 어떤 신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게 나와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반대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쉬운 장면들도 있었고요. 앨범 꺼내보듯이 지나간 시간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어요."

극에서 구도원은 이른바 병원의 성주신 같은 존재다. 응급 상황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묵직한 평정심으로 진두지휘하고, 후배들에겐 묵묵한 신뢰의 상징이다. 대본만 놓고 봤을 땐 그런 면들이 판타지로 다가왔다고 정준원은 고백했다.

"처음엔 이 인물을 100% 이해하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혼을 내면서도 자상한 사람이에요.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사소한 균형이 이 인물의 판타지 같았어요. 저라면 도원처럼 못할 거로 생각했지만, 계속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후배들이 도원을 어떻게 보는지 그런 시선들이 저에게도 도움이 됐어요."

정준원 / 사진=에일리언컴퍼니

흥미로운 건 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2020) 당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캐스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감독의 제안으로 이어진 기적 같은 재회였다.

"오디션을 봤을 때 구도원으로 딱 정해진 건 아니었어요. 오디션도 서너 번 본 것 같아요. 대본 자체로도 역할이 정말 멋있더라고요. 정말 멋진 인물이고, 이렇게 비중 큰 역할을 맡아본 적도 없었는데 저한테 이런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죠. 그래도 감독님과 세 번째쯤 만났을 때 혹시나 하는 희망이 있었어요(웃음). 어떤 지점을 보고 저를 구도원으로 캐스팅했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대화에서 이 역할과 교집합 된 부분을 보신 것 같아요. 제 생각엔 편안함이 감독님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대중의 반응은 어떻게 체감했을까. 그는 웃으며 "이번에 내가 나이 많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고 했다. 실제로 함께 호흡한 배우들 대부분이 90년대 중반 혹은 2000년대 초반 출생인 만큼 상대적으로 1988년생인 정준원의 나이가 더 도드라져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준원은 "사실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어릴 땐 오히려 어려 보이는 게 콤플렉스였어요. 그런데 진짜 어린 친구들이랑 붙어서 연기하니까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또 로맨스 호흡을 한 (고)윤정이가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더 비교됐던 것도 같아요. 당연히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그래도 구도원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주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잘 소화하면 시선은 자연히 바뀔 거라 믿었어요. 물론 처음엔 불안했지만요. 그리고 잠시나마 고윤정의 남자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고 영광이었습니다."

정준원 / 사진=tvN

구도원을 연기하며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었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정준원은 차분한 어조로 "진심"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어떤 기술적인 계산보다 진심 어린 연기가 디테일을 살린다고 믿는다.

"무언가를 억지로 더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대본에 있는 그대로 그 마음을 따라가고자 했죠. (고)윤정이가 오이영으로서 정말 잘해줘서 리액션만으로도 신이 잘 나왔어요. 드라마 유튜브에 클립 댓글을 보곤 해요. 의미 없이 보이는 행동들도 사람들은 다 의미를 부여하더라고요. 결국 진심을 담아야 디테일도 살아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현실 남친'이라는 수식어로 주목받은 로맨스 연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도 아끼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알콩달콩한 장면보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미묘하게 움트는 초반의 간질간질한 시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고윤정과 빨리 친해져서 촬영 초반부터 친구가 됐다. 그런데 그만큼 로맨스를 해야 할 때는 민망했다. 제 몸이 그런 걸 좀 거부하는 게 있다(웃음)"고 말했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원래 예정된 방송 시점보다 긴 시간 지연됐다. 실제 촬영이 후반부에 접어들 무렵, 의료 파업으로 편성 논란이 불거졌고 작품 전체가 불확실한 시간 속에 놓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해당 사안이 불거진 건 중후반쯤 촬영하던 시점이었어요. 제작진분들도 '분명히 공개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달라'며 우리를 많이 위로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냥 믿고 갔던 것 같아요. 기다림 끝에 이렇게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셔서 그저 감사하죠."

정준원 / 사진=tvN

구도원이라는 캐릭터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랑 닮은 구석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래서 캐스팅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까지 멋있는 사람은 아니지만요(웃음). 이 역할로 많은 관심을 받는 것도 배우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 같아요. 지워지지 않을, 정말 선물 같은 캐릭터예요."

그는 이 작품을 "배우 인생의 출발점처럼 느껴진다"고도 표현했다. 데뷔 10년 차에 처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그는, 지금의 시간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긍정적인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부족하다"는 고백 속에는 이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귀하고 충만한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감격이 실려 있었다. 시작점이란 단어는 보통 신인에게나 쓰이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진짜 첫 페이지였다.

배우 일을 오래 하고 싶다고도 밝힌 그는 어떤 특별한 야망보다 현장에서 "쓰임이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뭘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통해 더 넓은 스펙트럼을 쌓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는 "그냥 다양한 역할을 오래 하고 싶다. 어떤 특별한 목표보다 꾸준히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준원은 10년의 무명 끝에 '구며든' 배우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는 화려함보다 "무던하게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이 스포트라이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그의 단단함을 엿보게 했다.

"편안하고 친근한 배우로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연기한 작품을 보고 위로와 공감을 기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런 작품에 조금이라도 지분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 무던하게 연기하면서 꾸준히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올해로 제가 연기한 지 딱 10년이 됐어요.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그냥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지니까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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