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런 꽹과리 소리 내는 두뇌들을 보면

“형통할 형(亨)자, 형태(亨泰)로 하겠어요.” 어머니는 아들 이름에 한껏 욕심을 부렸습니다. 동네 한약방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지어달라 부탁을 했는데 두개를 추천하더랍니다. 어질 현(賢)자, ‘현태’로 지으면 어질고 영리한 큰 학자가 될 거고 ‘형태’로 하면 돈을 많이 벌 거랍니다. 이북에서 삼촌 따라 부산 피난 내려와 갖은 고생을 다 했으니 당연히 돈 많이 버는 게 당신 꿈이었겠지요.
하지만 나는 돈이고 뭣이고 세상 이치를 알아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이고, 내 이름을 현태라고 짓지, 욕심은 굴뚝 같아 가지고” 하며 타박을 하면 노인네는 이럽니다. “‘현태’ 하면 어딘가 답답하지 않냐? ‘형태’ 하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어감이고. 시원하게 만사형통해야지.”
현태라고 안 지었어도 조상님 덕에 공부하는 유전자를 받아서 나름 법대를 가 고시도 붙었으니, 현태라 지었더라면 세상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다 깨달았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모였다 소리 듣는 대학 동기, 선후배들 다수가 걸어온 자취를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알량한 지식을 그저 제 한몸 잘 먹고 잘 지내는 데 써먹었으니 말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육군사관학교와 서울 법대 출신들이 군사독재의 앞잡이가 되어서 “육법당”이란 조롱을 받았지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며 그 이후에도 여전했구요.
현직 대통령이란 사람이 제맘대로 안 된다고 군인들을 시켜 국회를 점령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의사들을 처단한다는 계엄을 선포해서 지난 넉달 동안 국민들이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나요. 이번에도 역시 육사, 법대가 곳곳에서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허무는 데 앞장섰지요. 과거와 다른 거라고는 전에는 육사가 주도하고 법대가 머슴 노릇을 했는데 이번에는 법대 출신 대통령이며 국회의원, 판검사, 고위 관료들이 주인공이 되고 군인들이 머슴이 되어 ‘육법당’이 ‘법육당’이 된 거 정도겠지요.
지난 몇달 법대 동기들 카톡방 역시 판검사를 지낸 녀석들이 내란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들을 올려 그 방을 나오려다 참았습니다.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로 대법관님 운운하며 점잔을 빼는 그 방에 육두문자를 써서 욕을 하고 “니네들은 법대 나온 게 자랑이지?” 하고 조롱도 했습니다. 평생 똑똑하다는 칭찬만 듣고 판사님, 검사님 하고 존대만 받던 녀석들이 친구한테 공개적으로 쌍욕을 들었으니 충격이 컸을 겁니다. 그때는 내가 술김이기도 했고, 민주공화국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이 너무도 위협받던 상황이라 그랬던 거지만 돌이켜보면 욕설은 너무했나 생각도 살짝 듭니다. 아니지, 욕먹어 싸지.

나는 세상과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 공부를 해왔고 서양 철학이며 불교, 노자, 주역,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책들을 여러번 보았지요. 상대성이론, 양자물리학, 진화론, 뇌과학, AI 관련 과학책들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이런 책들이 막막하게 다가왔던 때를 생각하면 이제는 무슨 책을 보아도, 무슨 강론이며, 법문을 들어도 앞뒤가 조금 보이고 ‘아, 이분이 아직 잘 모르시는구나’ 하는 평가도 감히 내려봅니다. 그리고 유튜브에 들어가 스님, 목사님, 명상가들 강의도 들어보았지요. 깨달았다는 분들이 참 많더군요. 법자를 탁탁 치는 스님이며 볼펜을 번쩍 들어 보이는 도인, 선정에 들어 꼬리뼈에서부터 찌릿찌릿한 게 올라와 몸을 휘감다가 번쩍하고 쓰러져 한 소식 했다는 아저씨. 다들 나처럼 세상과 나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자부를 하는 거죠.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이러셨죠.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과 나에 대해 이제 좀 알 거 같은 나도 그렇고, ‘한 소식’ 했다는 도사들도 그렇고,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 뭐 어쨌다는 걸까요.
그래서 금강경에서 “여래에 의해 깨달아졌다는 위 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이라 이름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래에 의해 제시되어진 그 어떤 가르침이라 부를 것도 없다”고 하셨나 봅니다.
개체에 불과한 내가, 개체에 불과한 어느 도사가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내가 구원받고 어떤 도사가 해탈하면, 뭐 어쩐다는 걸까요. 어쩌면 나의 구원이나 해탈을 향해 죽어라 쫓아다니는 거야말로 고도의 이기주의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진작부터 해왔지요. 굳이 구원이나 해탈이라는 ‘법’(法)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개체인 나나 개체인 도사가 아니라 나나 도사 안에 있는 전체이신 하느님, 불성(佛性)이 구원받고 해탈하는 거란 생각이 점점 듭니다.
아니, 하느님이니 불성이니 하고 이름 붙이면 또 그런 무엇, 그런 ‘존재’가 있다고 열심히 찾아다니는 게 우리 존재들의 한계이니, 뭐라 할꼬. 나라는 이기심, 이 개체를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경지? 지평?
나는 오늘 아침에도 돼지고기 된장국에 고등어 조림에 쌀밥을 먹었습니다. 저 쌀이며 고등어, 돼지를 죽여 나 살자고 먹은 거지요. 그러는 내가 무슨 구원이며 해탈 운운하다니요. 이 개체들의 세상에서는 남을 먹고 내가 삽니다. 개체의 숙명이고 넘을 수 없는 한계인 거죠. 초기 불교에 통달했다는 유튜브의 어느 도사는 도통하는 데 최악의 장애가 여자라고 붓다가 가르치셨으니 여자를 보면 무조건 도망가는 게 상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다들 도통하기 위해 여자 보고 도망가면 도통하는 도사들은 누가 낳고 누가 돈 벌어 시주해서 스님들 먹여 살리나요.
이처럼 있지도 않은 이 “개체 나의 구원과 해탈”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이렇게 끝까지 나를 놓지 못함으로 인해 정녕 이룰 수 없는 이 꿈이 참으로 슬픕니다.
공부 잘해서 법육당이 된 서울 법대 출신 대통령, 판검사, 국회의원, 장관들, 그리고 도통하려고 용맹정진할 자질을 타고 난 이들이 사실 따지고 보면 독립 불변의 저가 잘나서 그리된 건 아니지요. 마침 운때가 잘 맞아 그런 유전자 조합이 모여 잠시 이 세상에 그런 모습으로 출현한 것뿐이겠지요.
주변에 보면 공부 잘할 머리도 없고 부모 잘 타고 나지도 못했고 용맹정진하여 번쩍 깨달을 그릇도 못되지만 제 분수를 잘 알아서 이 개체 나의 구원과 해탈이라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 안 꾸고 옆에 있는 이웃의 어려움에 안쓰러워하고 뭐라도 도우려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자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렇습니다. 공부 잘하고 깨달음의 근기를 타고난 잘난 나도, 그렇지 않고 못나게 태어난 나도, 다 당신의 자녀요 불성을 지녔으니 우리가 개체로 한 세상 살아가는 동안 그저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살다가 갈 일입니다.
김형태(공동선 발행인·변호사)
*이 시리즈는 김형태 변호사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공동선’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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