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빛바랜 '스승의 날'의 우울한 풍경

제44회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교육부와 지방 교육청들이 저마다 조촐한 기념식을 개최하고 그동안 교육에 헌신한 공로자들에게 훈장·포장·표창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학교 교육과 선생님을 존중·존경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선생님이 교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판에 박힌 기념사에서는 도무지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우리 공교육을 살려줄 것이라는 주장도 공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교직 사회의 현실은 암울하다. 공교육의 핵심 기둥이면서 대표적인 전문직인 교직 사회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무섭게 치솟던 교대의 인기도 시들해진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교사를 '국가건설자'(nation builder)로 인식한다고 부러워하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11년 국정연설이 몹시 생뚱맞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 날개 없이 추락하는 교권
절망적인 교직 사회에 신물이 난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특히 젊은 교사들이 그렇다. 국회 교육위 백승아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학교를 떠난 초중고 교사가 9194명이나 된다. 2022년의 6774명보다 무려 35.3%나 늘어난 역대 최대급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전국의 유치원·초중고 교사 825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교사의 58%가 이직을 고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와 과도한 민원(77.5%), 낮은 급여(57.6%), 과도한 업무(27.2%)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의 기능을 사교육 시장에게 빼앗겨버린 공교육 현장에서는 '훈육'(訓育)도 사라져 버렸다. 싸우는 학생들에게 서로 사과하라고 훈계하는 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때린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부모가 되레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 공교육이다.
심지어 학생에게 칠판에 나가서 문제를 풀도록 한 교사를 학부모가 '정서적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SKY 출신이 아닌 교사가 내 아이를 SKY에 보낼 수 있을 것인지를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학부모도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 개최된 교권보호위원회가 무려 4234건이나 된다. 하루 12건에 가깝다. 그나마 2022년 3035건에서 2023년 5050건으로 크게 늘었다가 줄어든 것이다. 2023년 7월의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정치권이 허겁지겁 '교권 보호 5법' 등의 제도를 마련하면서 그나마 조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교권 침해의 유형도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해 의도적으로 교육활동 방해'(29.3%), '모욕·명예훼손'(24.6%), '상해·폭행'(12.2%), '성적 굴욕감·혐오감'(7.7%), '성폭력 범죄'(3.7%), '정당한 교육활동 반복적 부당간섭'(3.4%), '영상 무단 합성·배포'(2.9%)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학생에 의한 교사 상해·폭행과 딥페이크 등을 이용하는 성폭력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교사
교권 침해가 공교육 붕괴를 촉발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교육이 무너지면 국가 발전과 민주 사회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사들이 지식(知識)과 인성(人性)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린다.
우리 사회가 처음부터 선생님의 교권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노래하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학생은 물론 자식의 교육을 맡긴 학부모에게도 강조했던 말이기도 했다. 교권을 바로 세우고 교사의 훈육을 기꺼이 용납해야 하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자식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는 내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일하는 값싼 '공급자'(노동자)로 전락해 버렸다. 고객이 왕인 세상에서는 '수요자'(소비자)인 학생을 위해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가 오히려 학생을 보호하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훨씬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수요자(학생) 중심주의가 전환점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교육철학이 반드시 교권 추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서구 사회에서는 우리처럼 심각한 교권 붕괴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고객이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요자가 공급자를 함부로 무시하고 괴롭혀도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 발전의 격렬한 소용돌이가 전통적인 가정교육과 사회교육까지 휩쓸어 가버린 우리 사회의 사정은 엉뚱했다.
국가 백년대계였던 교육이 '민주화'를 앞세운 정치 바람에 속절없이 휘말리면서 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정치권 출신의 교육부 장관과 이념에만 매달리는 교육감들이 힘을 합쳤다. 국민의정부에서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해찬 전 장관이 '무엇이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해괴망측한 억지로 교육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교육의 본격적인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교육부가 공교육의 비효율을 극복한다는 핑계로 선택한 개혁의 대상이 바로 '교사'였다. 교사들에게 느닷없이 '촌지·폭력·비리'의 꼬리표가 붙여졌다.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챙기고 학생들에게 혹독한 매질을 서슴지 않는 집단으로 내멀렸다. 요즘의 유행어로 '카르텔'(떼도둑)이 돼버린 것이다. 교사는 더 이상 존경해야 할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학부모가 함께 경멸할 수밖에 없는 '선생x'이 돼버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이유로 시작된 지방자치도 교실 붕괴를 가속하는 요인이었다. 광역지자체의 교육을 틀어쥔 교육감들이 경쟁적으로 어설픈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사의 교권이 학생의 인권에 속절없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이 학생의 인권을 무시한 '정서적 학대행위'로 변질됐다. 오늘날 공교육 현장의 교사는 누구나 잠재적 '아동학대범'이다. 의심스럽다는 신고만으로도 직위가 해제되고 치욕적인 누명·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과 비용은 온전하게 교사의 몫이다.
법조계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의 비리에서 시작된 2016년 9월부터 시작된 '김영란법'도 교직 사회를 강타했다. 강의 시간에 학생에게 캔 커피를 받은 교수가 김영란법 위반 신고 사례 1호였다. 담임교사가 생일 축하로 학생에게 케이크를 받아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교직 사회에 대한 불신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1973년에도 서정쇄신(庶政刷新)을 핑계로 스승의 날을 폐지했었다. 1982년에 어렵사리 부활 된 '스승의 날'은 이제 공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몸을 사려야 하는 '불편한 날'이 돼버렸다.
미국의 교육제도를 어설프게 흉내 낸 '학생부'도 교권 붕괴의 요인이다. 학생의 모든 것을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의도는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학입시로 판가름 나는 우리의 현실에서 학생부는 치명적인 독소(毒素)로 작용하기도 한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실수와 일탈을 저지른 학생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 공교육 현장의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학생부의 기록을 관리하는 '기록·관리자'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부에 불리한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행정적·사법적 절차를 총동원하는 것이 학부모의 기본적인 책무다.
단순히 아동학대 관련 법·제도를 손보는 수준으로는 교권 회복이 불가능하다.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불필요한 긴장을 완화해야만 한다. 대학입시를 핑계로 사춘기의 학생에게 족쇄가 돼버린 학생부 제도를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 가정·사회교육도 되살려야
공교육을 되살리는 일은 사실 사라져 버린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을 되살리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동의 진정한 교육은 가정과 사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학교의 주된 임무는 '지식'(知識) 교육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을 통한 인성(人性) 교육도 사실은 부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점심에만 제공되는 급식만으로는 아동의 정상적인 발육이 불가능하다. 가정에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아침·저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학생의 모든 교육을 교사에게만 떠맡기겠다는 학부모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자세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교사에 대한 갑질을 일삼는 학부모에 대한 확실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민감한 이슈가 자리 잡은 '수월성'과 '기회균등'이 사실 교육 현장에서는 크게 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